지난 이야기
치호는 창준의 회사에 이상한 부서가 있다고, 그게 DM과 관련되어 있다 말한다.
부서의 특징을 들으며 창준은 과거 수진을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 날, 그 시간을 기점으로 나와 그녀는 같은 부서 동료가 되었고, 약 3년을 같이 일했다. 물론 훗날의 일은 예상하지 못한 채 말이다.
이치호의 부탁은 단순명료했다. 다만 너무 단순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 올 뿐.
사내 '기록출입부' 라는 부서가 있었다. 오래전 내가 몸담근 어떤 부서가 생각나게 하는 이름이었다. 단순히 보면 직원들의 입출입을 관리하나 싶기도 했다. 실제로 명찰같은 것들이 해당부서를 통해 전부서로 전달되었고, 출퇴근기록 시스템도 기록출입부에서 관리했다.
하지만 단지 그 정도의 업무를 위해서 부서가 필요한가? 대기업도 아닌 이 작은 중소 인테리어 회사에서 말이다.
이치호의 입김 때문인지, 이제야 인지를 해서 그런건지, 그 부서가 이상하게 보이기는 했다.
가장 의문스러운 점이 치호가 말한 내용이었다.
'망분리가 되어있어.'
보통 전산적으로 기밀유지가 필요할 경우, 외부 유출시 사고나 문제로 이어질만한 중요도 높은 업무나 데이터일경우, 망분리를 하는 회사는 많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일하는 회사는 그런 보안적인 측면에 예산을 들이거나 신경쓰는 곳이 아니었다. 그러니 인사기록에 전과가 있는 나같은 사람도 취업할 수 있었던 거기도 했다.
그런데도 치호의 말대로 기록출입부는 망분리가 되어있었다. 철저하게 외부 다른 부서에서 그 부서의 데이터나 업무를 확인할 수 없도록.
사내 메일 조차도 없어서 구글계정 메일을 쓰고 있는데 망분리라니.
하지만 의심스러운 것과 별개로, 내가 그 부서의 자료를 가져올 수 있을지는 더 의문이었다.
치호는 그 부서 안에 어떠한 비밀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 아이는 CSI나 범죄수사물을 너무 많이 본 것 같았다. 도명의 그늘을 타고 타고 가다가 보니 여기가 걸려든 것이다. 의문점에 살을 보태고 보태다보니 그곳에 답이 있을 것처럼 생각하는 심리일수도 있다.
이건 완전 헛다리를 짚은게 아닐까? 원래 뭐든 끼워맞추면 그럴싸해보이는 법이다.
내가 그의 장단에 맞춰서 권고사직 당할 위험을 무릎쓴채 기밀유출을 해야하는 걸까?
애시당초 기록출입부에 유출할만한 정보가 있기나 한걸까?
그러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신과장님. 공문 보내려고 하는데, 사원증 신규발급 요청 제가 작성할까요?"
"아니. 내가 직접할게."
나는 기록출입부에 전화했다. 수화기가 들리고 잠시 정적 후, 기록출입부입니다 하는 딱딱한 목소리의 남성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인테리어설계사업부 신창준과장입니다. 제 사원증이 인식이 안되어서요."
"..공문으로 보내주시면 담당부서로 보내드릴텐데요."
남자는 뭘 이런걸로 전화까지 하냐는 말투였다. 익숙치 않은 응대. 기본적인 전화예절도 없는데다 대답도 묘하게 반박자 느렸다. 제대로 끝맺지 않은 말은 너 알아서 해라는 것과 같았다. 이런 작은 말투 하나하나가 민원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걸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인식이 안되는 수준이 아니라 오류가 떠서요. 이건 한번 직접봐주셔야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제가 한 번 찾아뵐게요."
"아, 아니. 그럴 필요는.."
남자가 당황했다.
"물론 공문도 보내드릴거고요. 수고로울 수 있으니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나는 다다다 말을 쏟아내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벨이 울렸지만 조용히 수신거부를 누르고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이런 점에서 이치호는 아주 치밀했다.
망분리되어있는 부서 빼고는 이미 해킹을 끝마친 그는 내 사원증을 달라고 했다. 그는 안에 있던 칩을 꺼내 선에 연결해서 확인하더니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이거 내일부터 안될거야."
"뭐?"
"오류날건데 그걸 핑계로 기록출입부에 가면 돼."
"...."
"이렇게 보안에 허술하게 만들어놓고, 이걸 주는 부서는 철저히 보안을 유지하는 점이 수상하다고."
다음날 회사를 들어오면서 사원증을 대자 빽빽거리는 소리와 빨간불이 번쩍였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됐다. 단지 작동만 안할줄 알았지 이 정도로 소란이 될줄은 몰랐다. 불법침입인줄 알고 오던 건물 경비가 나를 봤을 때 나는 어색하게 웃어보이는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계단으로 갔다. 내려가는 길목에 내 손에 든 건 상자가 아니라 서류봉투였지만 자꾸만 기시감이 들었다.
늦여름이지만 무척더웠고, 비상계단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땀에 절어 있었다. 귓속에 있는 초소형이어폰-녹음기-가 잘 동작하는지 모르겠지만 내 이 수고로움을 이치호가 알아줬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영업사원으로는 최악의 모습을 한 채 나는 굳게 닫힌 출입기록부의 철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아까 그 남자였다.
"방금 전화드린 신창준입니다."
"....죄송한데, 그냥 문앞에 놓고가시면 제가 처리해드릴게요!"
통화와 달리 좀 더 앳된 목소리가 소리를 높였다. 문전박대도 유분수지, 왜 문을 안열어줘?
"에이 아무리 그래도 사원증을 바닥에 놓고가는건 좀 그래서요. 여기까지 온 성의가 있는데, 좀 열어주시면 안될까요?"
"...."
한참의 침묵. 다시 문을 두드려야 하나 싶은 찰나,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실내에서 차가운 기운이 훅 끼쳤다.
"주세요."
남자는 인상착의를 알 수 없었다. 하얀가운을 입은채 마스크를 쓰고 하얀색 실험용 장갑까지 끼고 있었으니까. 고글을 쓰고 있다 벗은 것인지 눈가에 자국이 선명했다.
나는 구둣발 한자국을 철문사이에 끼워넣었다. 남자가 시선을 옮기기 전에 말을 이었다.
"정없게 왜이러십니까. 같은 동료끼리. 저 너무 더워요..차 한 잔만 주시죠?"
그리고선 무작정 어깨를 들이밀었다. 남자는 당황해하면서 나를 밀어내려했지만 소심한 반항이라 작정하고 들어서는 나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무작정 들어오시면 곤란해요!"
사무실 안에는 남자 혼자였다. 책상이 몇 개 더 보이긴 했지만 개인자료같은 건 보이지 않고 깔끔했다.
중간에 파티션이 하나 있고 그 안쪽으로 방이 하나 더 있었다.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불빛이 환했다. 남자가 저곳에서 나온 상태라는 것을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채운 수납장에는 년도와 일자별 파일철이 가득했다.
구석에 사원증을 쌓아둔 플라스틱 통이 몇 겹 쌓여있었다. 정식적으로 '출입기록부'의 업무라 여겨지는 것으로 보이는 것에 비해 소박한 취급이었다.
들어와보니 더욱 확신이 들었다. 이곳은 단순한 경비부서가 아니라, 연구실이라는 것을.
"저기요. 제 말 듣고 계세요?"
남자는 이제 마스크를 벗고 언짢은 기색을 숨기기 않았다.
"아..여기 시원하네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저 물 한 잔만 주시겠어요?"
완벽히 철판을 깔고 말하니 남자도 별 수 없었다. 물만 마시고 가세요? 말을 던져놓고 남자가 한쪽 구석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경계심 어린, 미약한 경멸까지도 이상하게 다가왔다. 제 구역을 침범당한 직원의 노기어린 시선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 부서가 의문스럽다는 전제를 가지고 바라봐서 그런가 모든게 불필요할정도로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에 이런 연구실같은 부서가 있을 필요가 있나?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이치호는 PC에 한번만 꽂으면 된다고 했는데--. 컴퓨터는 겨우 한대가 켜져있었고, 그 마저도 모니터 뒤에 본체가 있어서 손이 잘 닿지 않았다.
겨우 꽂아넣고 나니 작게 빨간불빛이 들어왔다. 파란색으로 바뀌고 나면 다시 뽑으면 된다. 그 순간이었다.
"뭐하세요?!"
한 손에 물컵을 든 남자가 외쳤다. 몸이 살짝 컴퓨터를 향해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시선을 옮기며 잠시 섰다.
"사원증 놨는데..뭐가 잘못됐나요?"
눈짓으로 컴퓨터 옆에 둔 사원증을 가리켰다. 남자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당당해져야했다. USB를 회수하지 못한건 문제였지만.
나는 물을 받아들고 벌컥벌컥 마셨다. 실제로도 목이 탔다. 남자의 시선이 내 목울대를 빤히 보고있다는걸 의식했지만 모른척 했다.
"아유 잘 마셨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직 반쯤 남은 유리잔을 남자에게 건넸다. 상대방은 내가 물을 다 마시지 않았어도 개의치 않았다. 어서 나가길 바랄 뿐겠지. 내가 건넨 잔을 그가 받아들려는 찰나 손에서 힘을 뺐다.
바닥으로 유리잔이 떨어졌고, 예상대로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이 났다. 어중간하게 남은 물이 사방으로 튀긴 건 덤이었다.
내가 오바하며 정리하겠다고 하는걸 남자가 막았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며 더 이상 들어오지 말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원하던 바였다. 그는 빗자루와 걸레 등 청소도구를 가지러 다시 비품실로 들어갔고 나는 그 사이 파란 불빛을 내뿜고 있는 USB를 빼서 주머니에 구겨넣었다. 타이밍 좋게 남자가 나타났다. 깨진 유리잔을 치우지 못한채 나는 출입기록부에서 쫒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