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왕따의심 때문이지, 미행하려고 한 건 아니었습니다

by 은자루

지난 이야기


치호의 부탁으로 기록출입부에 다녀온 창준.

며칠 뒤 외근을 나간다.





오후는 외근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새삼스레 어제까지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판도 그런 철판이 없었다. 원래라면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을 경멸하는 쪽에 가까웠는데, 어느새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행동하는데 거리낌이 없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주머니에서 USB를 꺼냈다. 이게 뭐길래. 나 같은 일개 개인이 대체 뭘 할 수 있다고.


9년이었다. 9년. 사람은 대략 7~8년에 몸에 있는 모든 세포가 다 바뀐다는데, 결국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이 아닐까.


이치호가 내게 원룸을 보여준 것도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었다. 도망치지 말이 신경을 건든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도명에 대해 더 이상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다. 그건 내 인생 가장 큰 오점이자 진흙탕이었다. 이제야 겨우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데.. 죽은 사람은 무슨 짓을 한다고 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산 사람은 살아야하지 않나.


내가 그렇게 말하면, 그 녀석은 나를 경멸하려나?

그런 생각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통통 튀었다. 운전을 하고 있는 동안은 잡생각이 너무 많아졌다. 마침 방문할 업체 근처라서 길가에 주차한 다음 차에서 내렸다. 아무렇게나 내버려둔 시선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보였다.

평일 오후에, 길을 걸어가는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있는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눈에 들어왔다.


그게 이치호가 입고있던 교복과 같았기 때문에.

처음엔 그냥 눈에 익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그 무리 사이에 무표정으로 서 있는 이치호를 보고 나니 이제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친한 아이들처럼 보였다. 조금만 더 유심히 본다면, 그런게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만했다.

나는 그 애들이 이치호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우르르 햄버거 집에 들어갔을 때, 건너편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잠시 앉아 있었다.


계산은 이치호가 했다.

햄버거가 나오자 애들은 게걸스럽게 그것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이치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중간에 그가 일어서려는 제스쳐가 몇 번 있었으나, 그 옆에 있던 한 녀석이 그를 억지로 앉혔다. 짜증스러운 얼굴로 그는 대놓고 한숨을 쉬었지만 나머지 애들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결국 햄버거가 다 사라질 때까지 앉아있었으니.


저런게 왕따가 맞는 건가..?

나는 잠시 고민했다. 분명 저 무리에 들어가 있는걸 대놓고 싫어하고는 있는데, 무리의 눈치를 보거나 두려워하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치호를 포함한 다섯명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나도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섰다.


“야 게임방 가자.”

“그만 좀 하지.”


내가 알기로 그건 무리를 발견한 이후 처음으로 이치호가 입을 열고 한 말이었다.


“뭐?”

“필요하면 돈은 가져가. 근데 나는 거기 끼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돈이라니 치호야. 우리 친구잖아. 그냥 시간 좀 보내자는건데.. 그리고.. 네가 이렇게 만들었잖아.”


그 중 팔에 붕대를 한 녀석이 말했다.


“물리적인 상처에 대해서라면 나도 할 말은 있다고 보는데.”

“...”

“경찰조사를 하게 되면 피해자는 내가 될거라는 시나리오가 네 머릿속에는 안그려지나보네. 고소하지 않은건 나도 귀찮은건 딱 질색이라서 그 뿐, 네가 이쁘거나 미안해서가 아니라는걸 좀 인지하지?”


와 저 말하는 싸가지 보소.

이치호가 와다다 말을 쏟아내니 붕대녀석도 말문이 막혔다.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거겠지. 되바라진 녀석이 내 앞에서 얘기할 때 내 말문도 막힌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럼에도 조금은 응원하게 되는건 내가 아는 애가 저 녀석 뿐이라 그런걸까.

무리 중 다른 한 녀석이 다짜고짜 이치호의 멱살을 잡았다. 시내 한복판이었다. 아마 붕대녀석보다 생각이 더 없나보다.

예상가능하게 주위의 시선이 그들에게 몰렸다.

이치호는 무표정이었다.


“아, 씨.. 소름끼치는 새끼.”

“....”

“불쌍해서 놀아주려고 했더니..네가 거절한거다? 가자.”


붕대녀석이 상황을 정리하고 무리를 이끌었다. 그들이 점점 멀어지자 사람들의 시선도 흩어졌다.

그때였다.

툭---.

붕대녀석의 머리에 뭔가가 부딪혔다. 작은 종잇조각. 치호가 던진 것이었다.


“??”


이치호는 붕대녀석에게 가까이 갔다. 그가 붕대녀석 귓가에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더니 뭐라고 속삭였다. 여전히 표정만으로는 그의 기분을 파악할 수 없었다.

이치호가 돌아서고 나서 다른 무리가 보기전에 붕대녀석은 바닥에 있는 것을 얼른 주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똑똑히 보았다. 편지모양으로 곱게 접힌 지폐였다.


**

나에겐 두 가지 갈림길이 있었다.

나눠진 교복 무리의 소수-이치호-를 따라가냐 다수-그 외-를 따라가냐 하는 문제 말이다. 이미 업체에는 일정을 미룬 상태였다.


“저기 학생,”

“네?”

“어디 학교 다녀?”


나는 후자를 골랐다.


“....왜요?”


그럴 줄 알았다.

진짜 학교가 순수하게 궁금해서 물어본 거라고 이해해주지는 않..겠지?


“교복 이뻐서. 조카보고 거기 다니려고 하려고.”

“아하하하하하.”


대놓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렇게 악의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이쁘면 용돈이라도 주셔야죠.”


어쭈구리. 요즘 애들이 무섭다는 걸 새삼 실감했다.


“그래, 그래.”


나는 오만원짜리 한 장을 주며 다시 물었다. 이건 삥을 뜯기는게 아니다. 이건 삥을 뜯기는게 아니다..


“유지고.”

“....허어.”


이번에 탄식한 건 나였다.

유지고등학교.

거긴 혜경이 선생으로 있는 학교 이름이었다.




“으으으음.”


점심시간인데 밖으로 나오는 아이들이 상당했다. 나가서 점심을 먹는 건가.

혜경이 직원들과 밖으로 나가는 것까지 확인했는데도 막상 학교 안으로 들어서는 건 왜인지 어렵게 느껴졌다.

반차까지 쓰고 나왔는데, 내가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싶은건지 잘 가늠이 안됐다.

말 그대로 답 없는 상황.

하지만 지난번 상처도 그렇고, 불량한 무리 사이에서 그의 입지하며..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혜경이 그런걸 보고 무미건조하게 넘기는 선생일거라 생각하는건 아니었다. 하지만 모를 수도 있는거다. 학교폭력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러면 알아보려는 노력이 나쁠 건 없다고 본다.

하지만 외지인인 내가 나서는건.. 맞는 건가?


“에잇, 고민해서 뭐하냐.”


생각이 많아지면 항상 시기를 놓쳤다. 앞으로 내 삶에 얼마나 많은 시기를 놓칠까 생각하면 온몸의 털이 솟을만큼 두렵다.

정신 차리고 보니 여기 있었다. 딱히 취미도, 할 일도 없는 내가 휴가를 내고 이곳에 오는게 뭐 그리 이상할까.

교문을 지나 운동장에 발을 디뎠다. 윤주는 아직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터라, 이렇게 흙으로 된 운동장이 얼마 만인지도 모르겠다.

엄청난 주목을 끌거란 예상과 달리, 막상 학교 안으로 발을 디딛고나니 생각보다 사람들의 시선은 멀어졌다. 그래. 학교에 꼭 아이들만 오란 법은 없다.

일단.. 이치호가 몇 반인지 알아야겠는데. 교무실은 보통 1층에 있으니까 일단 그쪽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의외의 인물을 먼저 마주치고 말았다.


“어엇? 지난 번에 신사임당.”

“엇?”


저 붕대녀석은 나를 저렇게 기억하고 있구나. 하긴 나도 ‘붕대녀석’이다.

학교에서 만난게 반가웠는지 그 애가 내 앞으로 달려왔다. 저번보다 붕대가 꼬질꼬질해졌다.


“여긴 왜 왔어요? 진짜 조카 보내려고? 그렇다고 삼촌이 탐방까지 오는 거예요?”

“아, 음. 뭐 그렇지..?”

“개쩌네. 용돈도 많이 주겠네 조카. 부럽네. 나도 아저씨 조카할래요.”


날티나는 얼굴과 다르게 어울리지 않는 애교를 부리는것도 저 나이 때 보이는 허세같아서 그냥 봐줄만 했다. 봐줄만한 거 보니 나 스스로 되게 나이가 먹은 느낌도 동시에 들었다.


“우리 학교 궁금한거 있어요? 내가 다 알려줄게요.”

“어 그게..”


이 녀석은 이치호를 싫어하는 것 같은데, 이치호에 대해 물어도 되는 걸까.


“너 몇 반이야?”

“5반이요. 왜요?”

“그냥. 원래 몇 반인지 물어보는 게 순서잖아.”


헛소리지만 이번에도 넘어가기를 바랐다. 다행이 녀석은 잠시 갸웃거렸지만 크게 생각하거나 반문하지 않고 넘어갔다.


“교무실은 어디?”

“교무실은..”


붕대녀석이 손가락을 들고, 그와 내가 나란히 시선을 1층 쪽으로 옮겨서 바라보던 찰나였다.

쿵— 하는 큰 소리가 났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니,


“....뭐야?”


커다란 물통을 바닥에 떨어트린 이치호가 그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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