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생수 한 병 같은.

하루 동안 도파민이 뿜뿜 하는 총량은 정해져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제한된 도파민 분비에 대한 주도권을 내가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류가 도파민이 제멋대로 흘러나오는 것을 자가 통제할 수 있었다면 모두 선하고 똑똑하고, 위대한 군집으로 거듭났을 것이다. 그러나 유약한 인류는 마약과 같은 이 도파민을 어떻게 쉽게 얻어낼 수 있을까를 자연스레 학습한다. 당장 술을 마시거나 흡연을 하거나, 심지어 마약을 하거나 혹은 포르노를 보는 행위는 인풋에 드는 노력 대비 아웃풋, 즉 쾌락의 수준이 매우 높다. 어떤 곳에 나의 아까운 도파민을 뿜어낼 것인가는 내가 선택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중독된 뇌가 끌고 가는 것에 가깝다. 원치 않는 광고에 자극을 받고 반응하는 것처럼 높은 기댓값을 간단히 얻을 수 있다면 슬롯머신을 당기는 것처럼 기계적으로 인풋을 넣게 된다.


인간만이 지닌 특징이라 믿었던 자유의지는 사실 존재하지 않고, 의식보다 아래에 있는 기저로부터 트리거 될 뿐이라는 서브리미널 효과가 증명된 바 있다. 그래서 더욱 의지보다는 환경과 습관에 기대야 한다. 하루의 루틴을 일정하게 반복하며 불필요한 외부 자극으로부터 몸과 마음을 숨기는 것이 최선이다.


제한된 도파민이 필요한 곳에 쓰이도록, 그렇게 꼭 필요한 곳과 집중해야 할 곳에서 쾌락을 더 크게 느끼려면 아주 쉽고 간단히 얻을 수 있는 쾌락을 거부해야 한다. 이미 터져 나오는 쾌락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하니 애당초 자극을 받을 만한 환경에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


세상을 등지고 혼자 살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행복의 사이즈는 관계의 크기와 밀도에 비례하니 인간으로 태어나 동굴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것은 무의미한 자살과 다름없다. 그저 우리가 가진 생수 한 병 같은 아까운 도파민을 나와 아무 상관없는 길바닥에 뿌리거나 별 볼 일 없는 남의 얼굴에 물싸대기 날리는 데에 쓰기보다 집 앞마당의 나무 한그루, 꽃 한 송이를 단단하게 키우는 데에 써보자는 것이다. 유한한 하루를 값지게 보내고 삶의 밀도를 올리는 데에 더 나은 선택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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