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한국사회의 소위 "민원"에 대해 정리하여 MZ 세대 직원들의 코칭에 활용하고자 정리하려고 한다.
1945년 해방 후, 필자가 알기로는,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공무원들이 나라 일을 하고 있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위 "커 미선"이란 뒷 돈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사람이 하는 일에는 지금도 다 있다고 생각이 든다.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커미션의 출발점은 미군정 교육위원회에서부터 나온 것이라는 지나가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결국 자본주의 비정상 행위라는 판단이 든다.
그 시절에 대한 것은 필자도 잘 모르고 해서 필자의 조부님 일화를 언급하고자 한다. 이승만 정권 시절, 필자의 조부님께서는 자유당 대구 갑구위원장직을 수행하셨기에, 당시 대구 신천 북쪽지역의 민원을 다스리고 계셨다. 그래서 전해 들은 말씀은 당시 대구시경 경무국장이 매일 필자의 조부님께 문안을 드리며 이런저런 대구 갑구의 민원이나 사건사고에 대한 논의를 하셨다고 한다.
필자의 선친시절, 이미 말씀드린 바, 대구 최고의 극장인 한일극장 상무이사로, 당연히 대구시청, 중구청, 중부경찰서, 중부소방서, 세무서 등 공무원분들과 교제를 하실 수밖에 없는 사회적 위치셨다.
1970년대 야간 통행금지 시절, 대구의 애주가들 중에는 11시가 넘은 시간, 더 술이 당기면 야통이 없는 관광 도시 경주로 가곤 했다.
또한 부친의 친구분들 중, 음주로 야통에 단속되어 당시 파출소에 구금되면, 필자의 선친께 전화가 오곤 했다. 그러면 필자의 선친께서는, 마치 은행이나 직장 인보증을 서시듯, 파출소장과 얘기가 되어, 그 친구분들 귀가시키고, 다음날 대구 대명1동에 있는 즉결심판소에서 금벌형을 받아 벌금을 납부하곤 하였다.
그런 시절도 있었다는 것이 방점이다.
필자의 경우는, 정말로 보통사람인데, 조상님들의 은덕이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공무원, 경찰, 한전 등 기관에 있는 친구들이나 지인들과의 관계가 좋은 편이다.
ㅈ필자의 친구 중에 서울 국세청에 민원실에 관리자로 있는 친구는 윗사람으로부터의 업무 스트레스가 아니라 민원인으로부터의 스트레스 때문에 국세청 퇴직하면 개인택시 기사가 꿈이라고 하는 친구도 있다.
필자의 연구소가 있는 대구 달서구 출신 김용판 국회의원께서는 경찰 출신으로 소위 "주취자 법안"을 재정하셨다. 세상살이 누구는 불만이 없나? 술 취해서 공무 집행을 방해하고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자들은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본다.
필자의 능인고 27년 후배 중에, 2014년 서강대 경제학과 입학 때부터 필자와 연결되어, 지난 행정고시 재경에 합격하여 현재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진천본원에서 하이브리드 교육을 받고 있는, 미래 대한민국의 동량도 있다. 필자는 5 공시절 버어마 아웅산에 돌아가신 필자 집안 어른이신 서석준 경제부총리님 같은 나라 재정 정책을 이끌어 나갈 동량으로 그 후배가 성장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며, 대한민국의 모든 공직자분들께서 오늘도 민원과 한판 대결을 무난하게 잘 이끌어 가시 길 이 자리를 빌려 응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