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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 Sep 10. 2020

[에세이] 고시원 생활자들

무기력한 고시원 경험

서울에서 첫 직장에서 일하던 초창기에, 잠시동안 고시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가능한 값이 싼 곳을 구하려다 보니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거리의 번화한 길가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밤에는 좁다란 창밖으로 중국어로 벌어지는 요란한 싸움소리가 흘러들어와 잠들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같이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일용직 아저씨들이었다. 조선족과 뒤섞인 이들은 사실 누가 조선족이고 누가 토박이인지 알기 힘들었다. 그냥 그렇게 초라한 모습만은 누구에게나 평등한 모습을 비추나보다. 도저히 어디서 왔고, 어디로 다니는지 몰랐다. 그냥 구름처럼 음울한 사람들이었다.

어디서나 낡고 좀먹은 냄새가 났다. 술냄새가 났고 담배냄새도 났다. 하나뿐인 낡은 냉장고에서는 썩은 냄새가 났다. 한 곳에서는 반쯤 열린 문으로 하루종일 주식 차트가 펼쳐진 컴퓨터 모니터가 보였다. 그 주식 차트는 내가 떠날 때까지도 여전히 꺼질 줄 몰랐다.

좁고 불편한 침대에서 자니 허리가 아팠다. 거기서 매일 같이 자면서 허리가 상했을 아저씨들은 아침에 깨어 어디로 가려나 싶었다. 한번은 자다가 뜬금없는 곡성에 깜짝 놀라 깼는데, 귀신인가 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소리는 점차 야릇한 신음으로 변해갔는데, 알고보니 옆방에서 포르노를 보는거였다. 나는 그런 삶이 우스꽝스럽다 싶어 혼자서 킥킥거리면서도 어딘가 서럽게 느껴졌다.

모두들 퀭한 눈이었다. 말소리를 전혀 들려오지 않았고, 종종 티비 방송소리만 흐느끼듯 흘러나왔다. 하지만 언젠가 정문 비밀번호가 바뀐 줄 몰라 쩔쩔매던 나에게, 부역에서 자주 보이던 아저씨가 대뜸 다가와 무뚝뚝하고 조금은 어설픈 말씨로 비밀번호를 알려준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적적할 때면 옥상에 올라가 하모니카를 부는게 취미였다. 그곳은 1층에 있는 양꼬치집의 환풍기 소리 때문에 내 하모니카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아 혼자 청승부리기 적절한 곳이었다. 그곳에 올라오는 사람도 없었다. 애초에 그럴 여유를 가진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양꼬치집의 굴뚝소리를 들으며, 나는 그 사람들도 다 연기처럼 소모적이라는 느낌만 들었다. 그들에겐 새해도, 추석도, 크리스마스도 모두 가슴 벅찬 기념일이 아니라 그저 연기처럼 흘러가는 우울한 시간들일 뿐일거다.

이런 음울한 분위기가 너무 무겁게 느껴졌던 나는, 대충 월급이 어느 정도 모이자 밤도둑처럼 그 곳을 빠져나와 부근에 옥탑방 원룸으로 도망쳤다. 솔직히 원룸에서 혼자 사는게 거기서 그들과 좁다란 벽을 두고 비좁게 구겨져서 사느니보다 덜 외로울 지경이었다.

여전히 마음은 찐득히 우울하다. 그다지 정이 가지도 않고, 인간미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런 현실이 싫었다.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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