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가을밤, 유독 어둑한 밤이었다. 건너편 산에서 숲 속 새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동요하지 않고 고요히 버티고 선 가로등과 그 곁에 선 나이보다 늘그수레한 아버지의 그림자만 기억에 남는다.
그날부터 어두운 밤의 가로등이 조금은 공허한 모습으로 가슴에 남았다. 아마 엄마와 우리 남매가 교회에 가는 주말이면 홀로 돌아오는 아버지의 걸음걸이에 담긴 외로움을 흐릿한 달빛과 함께 비추었을 가로등이었다. 잿빛으로 차가운 밤하늘에 뜬 공허한 눈동자 같이 어렴풋하게 금방이라도 사라질듯 남아있는 가로등이었다.
공허하게 응시하는 가로등을 홀로 서서 지켜보아야 했던 꿈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 몇 안 되는 악몽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