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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 Jan 13. 2021

[비평] 짓눌린 자아들의 민주주의(4)

공적 세계 참여의 상실

1) 공동 기억의 소진

 카림의 설명에 따르면 1800년대에 시작된 민족 형성과 민주화가 1960년대 2세대 개인주의의 대두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동질사회를 구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서구의 민주주의는 대체로 동질적인 사회 속에서 꽤 긴 시간에 걸쳐 공동의 기억을 숙성시켜 왔다고 이해할 수 있겠다. 반면 한국은 생각보다 민주주의와 공동의 민족의식이 공존하며 일체감을 제공해주었던 시기가 대단히 짧았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불안정 속에서 부침을 겪다가 1987년에 정착되었고, 권위적인 군부 정권이 힘을 내려놓기까지 조금 더 시간이 걸렸다. 이 무렵 한국은 민족의식의 측면에서 동질사회였다. 더불어 대북관계 역시 보다 유화적인 국면에 접어들었고, 점차 한민족이라는 동질감에 기초한 민족의식이 민주주의의 중심적인 형상으로 자리 잡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동질성, 민족주의에 분열이 일어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학창시절을 보냈던 2000년대 중반 무렵에 이미 국사 선생님이 이렇게 선언한 적이 있다. “한국은 더 이상 단일민족 사회가 아니”며, “오래전부터 여러 핏줄이 섞인 인종이었고, 앞으로는 다문화사회에 더욱더 복잡한 민족 구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제 민족이라는 환상은 시험을 받게 되었다. 또 민주주의에 대한 참여는 그 자체가 다양한 요구를 분출시킴으로써 사회의 다원화를 초래하게 한다. 한편에서는 경제적 이익에 바탕을 둔 이익집단들이 성장하고, 또 한편에서는 개별 정체성에 기초한 정체성 정치의 집단들이 민주주의 동질사회 내부에 경계를 만들고,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한국사회 특유의 빠른 사회변천이 이 모든 과정을 재빠르게 이행시켰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민주주의와 공동의 민족의식이 공존하며 정치적 일체감을 제공해줄 수 있었던 시기는 1990년대 초반 정도에서 2000년대 중반, 길게 보아서는 반미와 민족 감정이 마지막으로 불타며 뒤섞여서 분출되었던 2008년의 광우병 시위와 북한에 대한 유화적인 감정이 완전히 가라앉아버린 2010년의 천안함 사태 등 일련의 흐름이 이어지던 2000년대 말엽 정도에 이른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동질적인 정체성에 바탕을 두고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일체감의 기억을 숙성시켜 나가기에는 너무나 짧은 기간이었다.


 1990년대·2000년대 역시 사회 파편화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는 끈덕지게 하나의 일체감이 사회에 남아 있었다. 그것을 민주주의 체제 내에 능숙하게 녹여내는 게 중요한 과제라는 데에 공감대가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런 일체감이 다양한 이익 갈등과 다원화된 정체성의 분열 속에서 흐릿해져 간다는 상실감 역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었다. 그 상실감은 해를 거듭할수록 강해졌다. 이와 대비되게 다원화된 사회의 각종 정체성 정치 슬로건들은 보다 선명해졌다.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기성 공동체는 모두 억압적인 것으로서 모두 파괴해야 한다는 강성한 슬로건을 내걸고, 그런 활동에 강한 성취감을 느끼는 운동가들도 생겨났다.


 사람들은 전반적으로 자유로운 발언의 기회와 자기 진실성, 즉 개성표현에 대한 관용 정신을 갖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사회가 갈수록 이질적인 배경과 지향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갈라져 간다는 두려움 역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도 이를 봉합시킬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무력감이 동시에 자라났다. 


 는 서로 다른 이익 관심사들과 서로 다른 정체성의 관심사들을 민주주의의 품 안에서 함께 보듬어 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기억과 역량이 긴 시간에 걸쳐 축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동질적인 정체성에 바탕을 둔 민주주의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일체감’이라는 기억이 너무 짧은 시간 동안만 축적 되었던 탓에, 마찬가지로 너무 빨리 소진되고 고갈되어 버릴 수 밖에 없었다.


 한쪽에서는 민주주의 제도가 정착되어 민주적 의식이 무르익으면서 점차 높았던 수준의 권위주의와 병영사회, 비민주적 가치관이 감소하는 우하향 곡선이 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이와 동시에 자유민주주의의 필연적인 부산물로서 사적 이익 추구를 통한 개인화, 다문화·소수의제 활성화에 바탕을 둔 사회의 다원화·이질화 경향이 상승하는 우상향 곡선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 가지가 X자 모양으로 교차하면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만 한국사회에서 동질적인 정체성에 바탕을 둔 민주시민으로서의 일체감이 구현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민주화 이후 오로지 몇몇 찰나의 순간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짧은 시간동안 축적된 공동의 기억은 너무 빨리 고갈되어버리고 만다.


 참여정권 시절 내내 누구든 민주주의 정치의 광장에 나설 수 있었고, 그 목소리는 사회를 개선하되, 분열된 사회를 만들기보다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해야 한다는 방향에 방점을 두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 다른 정체성과 이권에 메인 시민들을 ‘시대의 온기’로 엮어 내어 결속감을 만들어내자는 방향이었다. 그러나 공동의 기억이 소진되어 간다는 느낌,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결속감이 바닥났다는 느낌은 점차 정치에 대한 냉소와 환멸로 이어졌다.


 그리하여 그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는 역대 가장 낮은 투표율로 공동의 가치보다는 실용주의 기조에 입각한 정권이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내 이 정권이 공동의 가치를 탈피하여 보다 노골적이고 선명하게 개별 이익 추구를 독려하는 정권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뒤늦게 이미 소진되고 고갈된 민주주의적 일체감을 되살려 보려는 움직임, 시위와 운동들이 광장에서 들끓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기억이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며 결과적으로 사회가 더욱 통합되었다기보다는 더욱 분열되었다. 투표율은 점차 다시 높아졌지만, 감정의 골은 더욱 깊게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일치감을 제공해주는 민주주의에 대한 공동의 기억이 너무 부족했다. 따라서 시민들은 갈수록 개별 이익이나 정체성 집단의 대표성을 위해 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는 수단들도 언제든 동원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우리는 어디서든 커뮤니티나 SNS의 조직력을 활용해서 여론을 왜곡된 방향으로 호도하는 행위 등을 볼 수 있다. 샌델식으로 이야기하면, 정체성이 다른 시민들과 더 이상 결속감을 느끼게 되지 못하게 되면서, 취약한 위치에 있는 타자들에게 관용을 베풀고 배려하기 보다는 그런 위치에 처한 좌절감을 조롱하고 혐오하는 경향도 두드러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진보 진영의 정치세계를 뒤덮은 정체성 정치 집단에서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이를 자정하고 민주적인 공론 영역으로 끌어 오려는 노력은 다소 무력하기만 하다.


2) 자긍심의 상실

 민족의식과 민주주의의 결합이 유지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그 공동체에 참여한다는 자긍심 또한 필요하다. 1990년대·2000년대에 걸쳐 있는 시기에 한국은 실질적으로 문화수출산업이 성과를 보이고, 국제적인 위상 역시 적지 않은 수준 상승했다. 민족의식은 이전의 저항적이고 피학적인 민족정서에서 보다 그런 민족에 소속되어 있다는 자긍심을 채워주는 형태로 재정립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중앙에서 주입하기보다,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그런 자긍심을 채우고자 하는 열망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의 민족의식과 또 달랐다.


 개인적인 기억으로, 이 시기에 ‘민족의 형상’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즉, ‘한국적인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새삼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것이 망실된 사회에서 그런 열망을 채워줄 수 있는 정답은 없었다. 대개 전근대 전통사회에서 사실상 서로 맥락이 달랐던 여러 요소들을 가져와 뒤섞은 잡탕문화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쁜 경우 자긍심을 창출하기 위해 고대사를 과장하고 웅대한 민족혼이라는 감정을 창조하려는 경향마저 있었다. 이것은 현대적인 민주주의의 형상으로서 너무나 어색한 것이었다.


 자국 문화와 제품을 수출하며 민족적 자긍심을 향유하려는 태도는 결국 세계의 시선을 통해 자긍심을 확인받으려는 방향으로 향한다. 이는 한편으로 거꾸로 세계의 시각에서 자국을 들여다보는 관점을 내면화시키도록 만든다. 이를 통해 점차 민족의식은 상대화 되고, 종국에는 특권적인 지위를 잃고 상대적인 위상을 가진 것으로 떨어진다.


 자긍심과 연결된 민족의식은, 공동의 문화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여 동참한다는 효능감을 부여할 수 있다. 하지만 현 20대가 막 사회에 올라섰을 때는 공유할 수 있는 민주주의 주체로서의 형상이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2010년대 중반에는 민족적 자긍심을 고양시키려는 노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외에 비해 열위에 있는 요소들을 비하하는 담론, ‘헬조선’ 담론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제는 다시 ‘K-시리즈’로 대변되는 자긍심 만들기가 부흥하고 있지만, 나는 이 자긍심이 조금은 생기가 없다고 느낀다. 무엇보다 자긍심이 그 자체로 생기는 게 아니라, 자긍심이 있어야만 한다는 절박감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여러 가지 다양한 이익집단과 정체성 집단의 분열이 더욱 가속화 되어, 이전보다 민족적 자긍심에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의 비중도 높아졌다.


 카림은 오늘날 이러한 동질적인 정체성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한 개별 정체성 정치가 자긍심보다는 피학적인 감정, 피해자로서의 서사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SNS에서 울려 퍼지는 자신의 정체성 그룹을 찬미하는 목소리들 너머로 어딘가 진실성 없고 절박한 감정이 울려온다. 그렇지만 이런 방향은 정체성 집단으로서의 자긍심을 전혀 독려하지 못하고, 그 속에 있는 개인들의 시민적 덕성을 함양시키지도 못한다.


 우리의 정체성이 이해받지 못하고 외면 받았다는 감정이 민주주의에 대한 원망과 울분으로 향하는 현상 이면에는, 민주주의 사회 시민들 사이에서 상호 이해가 가능하도록 해주는 공동의 지반이 없었다는 사실이 숨어있다. 유감스럽게도 정체성 정치가 많은 경우 그런 공동의 지반을 고갈시키는 접근법을 활용하곤 했다. 더불어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구체적인 삶의 맥락이 상당 부분 추상화되어 있고, 따라서 공적 영역에서는 평등한 ‘개인권’ 이상 다른 어떤 이야기도 진솔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 역시 숨어 있다. 샌델이 이야기한 자발주의적 자유관의 ‘중립적 체계’만 위태롭게 휘청거리는 앙상한 뼈대의 모양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3) 문제 해소를 위한 노력들

 한국 정치와 사회는 매우 빠른 변천을 거쳤다. 카림의 설명을 빌려 온다면, 한국은 1세대 개인주의에 기초한 ‘시투아앵’의 경험이 극히 부족하고, 빠르게 2세대 개인주의로 이행하게 되면서 사적 정체성이 공적 영역에 진입하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샌델의 설명을 빌려 온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새롭게 대두된 정체성을 제외한다면 나머지들, 특히나 전통적 정체성에 매여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적 정체성을 괄호치고,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못하고 중립을 지킬 것을 요구받는다.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형상은 허물어져 있거나 파편화 되어 있다. 카림은 ‘텅 빈 자리’라고 묘사한다. 그녀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다시는 일체감을 겪을 수 없으며, 일체감이란 환상이라는 비관론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돌아갈 길이 없는 상황에서 계속해서 동요하고 흔들리는 민주주의 체제의 표류를 감당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이 점차 수면 위로 떠오름에 따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제안 역시 제시되고 있다. 보수적 정치 이론가들이 선호하는 해법은, 사회의 다원화 이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동질적인 부분을 되살려 공동의 국민의식, 공동의 국민 정체성을 새롭게 만들어내자는 것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최근 저서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의 위한 정치학』에서 미국의 오래된 ‘신조’를 바탕으로 국민 정체성을 회복하자고 주장한다. 그 신조란 크게 ① 동일한 종교(기독교), ② 동일한 민족(앵글로색슨 백인), ③ 동일한 언어(영어), ④ 동일한 통치원리(자유민주주의)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날처럼 다원화된 사회에서 앞의 두 가지를 요구하게 되면 종교나 인종을 차별하는 혐오주의자가 된다. 그렇지만 뒤의 두 가지는 언제든 요구 가능한 것이다. 후쿠야마는 바로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국민 정체성을 회복하자고 한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특정한 덕목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즉 애국심, 민주주의적 합의, 앵글로색슨의 기독교 정신은 여전히 권장할 만한 것이다. 기독교 정신이란 기독교 신앙 자체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초기 공동체 특유의 청교도적 노동윤리를 되새겨 보자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기획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이를 통해 다시금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부여할 수 있을까.


 이런 해법을 한국 사회에 적용하자면, 한국 보수는 오늘날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군사정권 시절의 탄압과 검열, 지역차별 등 나쁜 유산을 걷어내고, 애국심과 애향심, 새마을운동, 근면한 태도, 진취적인 경제성장 등 권장할 만한 요인들을 바탕으로 국민 정체성을 회복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전근대의 전통유산이 필요하다고 여겨지면, 유교의 입신양명 윤리 정도를 덧붙일 수 있겠다.


 그렇지만 이런 접근법은 어딘가 최근에 실패한 박근혜 정권의 기조를 연상시킨다. 박근혜 정권은 보편적인 정체감을 부여하지 못했고, 결국 특정한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는 유형의 정체성 정치가 되어버렸다. 이제는 보수 지지층 일각에서 박근혜 정권의 실패를 받아들이고, 정체성에 대한 관심사 전반을 거부하며 탈정체성 정치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그저 상식적인 선에서 유능한 엘리트들이 이끄는 시장 자유주의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접근법은 민주주의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을까.


 한편 진보주의자들이 선호하는 해법은 모든 사람들의 정체성을 다 부각하고, 그간의 약자 정체성 중심 정치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정체성도 새롭게 부각시켜 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정체성 갈등 보다 근원적으로 중요한 문제, 즉 더욱 깊어져 가는 빈부격차나 기후위기 극복에 함께 힘을 모아 공동의 기억을 축적시켜 나가자고 제안한다.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버니 샌더스는 자신이 상이군인들을 항상 존경하고 사랑해 왔다고 밝힌다. 명분 없는 전쟁에 임해야 했던 군인들은 그간 지탄의 대상이었다. 상이군인들의 정체성은 지난 정체성 정치에서 소외받고 외면 받아왔다. 샌더스는 다시금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흑인 페미니스트인 벨 훅스는 인종이나 성별과 같은 정체성 집단보다도 근본적으로 같은 계급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동질감을 느꼈다고 밝힌다. 진보의 가장 고유한 중심 화두인 빈부격차와 계급의 문제를 바탕으로 인종·성별 정체성의 문제 역시 더욱 깊이 있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미국 민주당 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는 그간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부식시키기 위해 애써왔던 가치, 즉 위대한 미국이라는 전망을 다시금 활용한다. 그리고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획인 그린뉴딜을 제안하여 기후위기에 보다 진취적인 방향으로 힘을 모으자고 제안한다.


 이에 자극을 받아 한국에서도 2019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그린뉴딜을 제안한 바 있다. 심상정은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놓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정보화 고속도로를 놓은 것처럼 정의당은 생태경제 고속도로를 놓겠다고 제안한다. 이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를 소환하면서 그 다음 세대의 공존도 동시에 이야기하는 접근법이다. 진보가 더는 ‘새로움’에 집착하다 이전 세대가 살아온 삶, 이전 세대의 자긍심을 모욕하는 일에 골몰해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그 바탕에 있다.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카림이라면, 이것 역시 어느 정도는 옛 세대에게 ‘감소된 정체성’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고 판단할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이제는 갈등과 분열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 민주주의의 테두리를 넘어서 자신이 기존 동질사회와 얼마나 다른지 극적으로 전시하려고 했던 그 숱한 시도들에 대한 진지한 회고와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이런 시도들이 본의 아니게 일으킨 사회적 상처와 상실감을 해소하기 위한 치유와 화해가 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다양한 정체성의 요구를 면밀하게 들어주면서도, 한편으로는 공존을 위한 공동의 덕목을 배양하는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지 공동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또 샌델의 논의대로 경제적 취약계층과의 결속감을 유지할 수 있는 공동의 의식을 성숙시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근 몇 년간 정체성 정치로 인한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무엇보다 먼저 대립하는 정체성 내부에서 가장 열위에 있는 사람들의 못난 삶이 더욱 비참한 것으로 그려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이들이 ‘진보좌파’ 운동가들의 입을 통해 더욱 가혹하게 조롱받는 모습을 보게 될 때마다 기분이 착잡하기만 하다. 이렇게 되면 될수록 이들에 대한 복지정책의 개입은 더욱 심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샌델은 공감에 한계가 있다고 이야기 했다. 사실 공감능력은 편협하게 발휘될 뿐 아니라, 현대와 같이 다원화된 사회에서는 굉장히 나쁘게 발휘될 수 있다. 상대의 고통을 잘 느낄 수 있으면, 거꾸로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심리적으로 궁지로 몰아넣고 더욱 가혹한 고통에 빠져들게 할지도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공감보다는 공존을 위한 동정심 정도가 적합할 수 있다. 이런 접근법을 바탕으로 좀 더 낙오된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공동체를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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