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보다 왜소한 자아를 가진 세대
오늘날 기성세대 진보는 청년세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또 새로운 세대와 기성세대가 함께 지향할 수 있는 진보를 어떻게 수립해 나갈 수 있을까. 기성세대는 1990년대생 이후 청년세대를 매우 강한 자아를 가진 개인주의자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 그들이 그려내는 청년세대에 대한 인상은 바로 이러할 것이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국제경험이 많아 세계화에 앞장서며, 온라인 활동에 유능하여 다양한 이슈에 참여하고, 자기 스스로에 대해 강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진 개인주의 세대.’
진보 일각에서는 새로운 세대에게 ‘세계시민주의적 정체성을 갖고 다양성 이슈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온라인 투사’로서의 자아상을 갖길 독려하는 경향이 있다. 이 글에서는 기성세대의 선입견과는 사실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청년세대의 다른 면모에 대해 성찰해보고자 한다. 아마 그것은 많은 부분에서 기성세대의 가치관, 기성세대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함께 공명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세계시민주의적 정체성을 가진 진보’와는 조금 결이 다른 진보를 제안하고자 한다.
청년세대는 탈정치화되고 탈이념화된 사회환경에 익숙하다. 이는 어떠한 가치나 이념에도 매여 있지 않은 개인주의적 자아가 성장하기 좋은 환경인 듯 보인다. 이념의 공백 상태가 청년들의 강한 자아를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개인주의적 자아는 사실 생각보다 강하지 않으며, 왜소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무엇이 이러한 왜소한 자아상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여기서는 대체로 수긍할 수 있을 법한 세 가지 요인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로 유례없이 진전된 세계화와 더욱 세밀해진 행정 시스템이 있다. 비대해진 세계화는 항상 더욱 거대해지고 추상적으로 변해가는 권력 구조와 함께하곤 한다. 개개인이 의식과 활동만으로 그 그런 구조를 제어할 수 없게 되면서, 개인이 공적 영역에 참여하여 자신의 삶과 사회를 개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줄어만 갈 수밖에 없다. 확장된 세계와 대비되는 무력한 자아가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모든 청년세대가 세계화의 흐름을 탈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일반화일 뿐이다. 세계화의 흐름에 탈 수 있는 청년과 그렇지 못하고 남겨진 청년으로 또다시 갈라질 수밖에 없으며, 청년세대를 세계화 세대로 등치 시키려는 선입견은 후자의 청년들에게 극심한 소외감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가진 독립적 자아로서 생각하고 행동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이해력과 통제력에 좌절을 안겨주는 비인간적 권력 구조들이 지배하는 세계와 마주하고 있다. (중략) 우리는 자력으로 이 세계와 대결하려는 순간 우리 자신이 압도적 열세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민주주의의 불만』, 2012.)
왜소한 자아를 만드는 두 번째 요인으로 청년세대는 생애 초기부터 이전보다 더욱 격해진 경쟁과 마주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더욱 줄어든 일자리와 안정적 삶을 위한 기회로 인해 청년세대는 더욱더 피폐해진 자아상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치열한 경쟁 속에 고립되고 상처받은 개인주의의 부정적인 모습이 부각 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경쟁 앞에 다른 가치들이 취약해진다는 점이다. 즉, 치열한 환경 속에서 내면화된 경쟁의식은 다른 가치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밀어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 청년세대의 많은 이들이 판단하기에, 개인의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쟁에 의문을 표하기보다, 경쟁에 과감히 뛰어드는 편이 낫다. 가능한 한 더 빨리. 이런 과정을 통해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고 계발할 영역은 협소해지게 된다. 많은 사람은 이 모든 현상을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나는 왜소한 자아를 만드는 마지막 요인으로 온라인·SNS 시대의 갈등을 제시하고 싶다. 한때 트위터와 같은 SNS는 새로운 시대에 민주화와 같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소중한 무기로 언론과 정계에서 주목받은 바 있다. 그러나 이제 청년세대에게 SNS와 온라인 공간은 정치적·도덕적 가치형성의 장이 아니라, 정치적·도덕적 이상의 상실을 확인하는 장이 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도입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기이지만, 우리는 끊임없는 비방과 모욕, 정치 선동과 저속한 표현을 확인할 수밖에 없다. 경직된 사회와 대비되게 갑자기 폭이 넓어진 온라인 커뮤니티는 자유와 민주주의보다도 인간 내면의 추한 본성, 극복할 수 없는 욕망, 타인에 대한 우월의식과 열등의식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직시하도록 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정의이며, 그래서 우리는 당당할 자격이 있다’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온라인과 SNS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차 익명 속에서 솔직해지고, 서로를 통해 본인들 스스로를, 그리고 사람이라는 존재 자체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누구나 순결하고 결백한 체하려 하곤 했지만, 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망으로 가득 차 있고, 다른 사람들을 내심 깔보고 업신여기며, 때로는 정체성 갈등 속에서 극단적인 가치관에 흡족함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불완전하고 못났다는 것을 어떤 핑계나 위선으로도 감출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순수하게 도덕적인 삶은 불가능한 것이다. 도덕적 인간이라는 이념은 사정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이 지점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가장 크게 달라지는 지점인 것 같다. 아무리 사회가 진보하더라도, 기성의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의 모습에는 절대로 도달할 수 없으며, 사실 그렇게 되도록 강제로 등을 떠미는 사회가 어느 정도는 병적인 사회인지도 모른다는 의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