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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 Feb 07. 2021

[비평] 진보의 용기란 무엇인가

대중의 감정과 함께가기 위해

과거 9.11 사태 이후 2000년대 미국의 진보 자유주의 저술가들, 언론인들이 보여주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이들은 테러리즘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테러리즘이 겉으로 보이기엔 평온한 일상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재앙처럼 보이지만, 사실 테러로 인해 희생당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너무 적어서 일상적인 교통사고나 실족사 같은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다. 그러니 테러가 무섭다는 이유로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들을 너무 배척하고 미워하지 말자는 것이 주된 결론이었다.

사실 이런 노력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이제와서 보면 이런 노력은 대중들의 감정을 전혀 이해하지 않은, 전형적인 먹물 좌파 지식인의 훈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쨋든 맞는 말이지만, 대중들의 실존하는 공포를 다스리지 못했고, 때로는 좌파 진영 전체를 멀리하면서 이슬람권 출신 이민자들을 더욱 멀리하게 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슬프게도 IS의 준동 이후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 더욱 많은 용기가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선지 요즘엔 테러리즘은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 자체가 어디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당시 진보 저술가들, 언론인들의 모습은 분명히 본받을 부분이 있다. 좌파 담론은 약자 보호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공포감에 젖은 대중들의 목소리에 말려들어가 힘을 잃기 쉽다. 평온한 일상을 깰 수 있다는 두려움은 너무나 보편적인 두려움이고, 그런 두려움을 달래면서 새로움을 받아들이자는 메시지를 외치는 건 너무나 대담한 도전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선지 한동안 우파들의 방식에서 모티브를 따오자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우파들은 냉정한 이성적인 목소리로 까칠하게 가르치려 드는 좌파 지식인들과 다르다. 우파들은 보편적인 대중들의 일상적인 감정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반공 일색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간첩으로부터 사회를 보호하자는 목소리가 대단히 호소력이 높았다.

대중들의 감정에 보조를 맞추자는 것, 좋은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성적으로 생각해 볼 부분들도 있다. 사실 진보 진영이 대중들과 공감하면서 대중들의 입장에서 진보적 가치관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는지 생각해보면, 별로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오히려 대중들과 공감하면서 갈수록 대중들의 이야기 속으로 말려들어가 진보적 가치관 자체를 망실하는 것 같다.

예컨대 청와대 청원을 중심으로 한 엄벌주의가 있다. 사실 이건 오히려 우파적 가치관에 가깝다. 범죄자를 강하게 낙인 찍고, 사회를 온갖 범죄가 횡횡하는 무시무시한 사회, 그래서 강철 같고 무자비한 힘이 필요한 사회로 규정하는 것 말이다. 대중들과 함께 두려워하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다 그런 두려움을 안겨주는 못된 사람들을 정치권력의 힘으로 강하게 벌주겠다. 이런 식이다. 그러면서 대중들이 서로를 배척하고 미워하는 감정에 함께 올라타서 강한 감정의 힘에 이끌려 길을 잃고 만다.

약자성이 화두가 되었는데, 그 약자들을 보듬기 위한 더 나은 사회라는 비전을 세우기보다, 그 약자들의 원망과 절규에 가슴 깊이 공감하고 그대로 끝나는 모습도 많이 보인다. 더 나아가야 하는데, 약자들의 원망과 절규에 제대로 공감하지 않는 것 같은 사람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골몰하다 끝나는 것이다. 더 이상의 비전은 없다.

홀로 고립된 약자들은 원망하고 절규하며 사회를 저주할 수 있고, 아무 문제없는 삶을 사는 것 같은 타인들을 비난하며 모욕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진보적 지식인들은 그래선 안 된다. 그들을 공감해줄 수는 있겠지만 함께 주저앉아서 함께 손가락질하고 애먼 사람들을 저주해선 안 된다.

그보다 갈등상황에 대한 성찰을 통해 더 나은 사회,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현실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세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진보에겐 새로운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그 어떤 것도 우리가 이룩한 사회, 대중들의 소중한 삶과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담한 신념, 그리고 그런 가운데 공존과 배려, 그리고 경제적 평등이 그 공동체를 더욱 풍요롭게 완성시킬 수 있음을 설득해야 한다는 분명한 신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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