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러운 사회에서 자기 중심을 지키고 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커다란 목소리를 내던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 일으킨 파문을 감당하기 힘들어지는 시기가 되면, 또 누구도 쉽게 다스리기 힘들 정도로 사회 갈등이 커지고 나면, 항상 사람들 사이에서 다시 모든 문제를 개인화하고 평온을 되찾으려는 열망이 강해지곤 했다.
우리 사회가 한동안 시끄러워서인지 간만에 그런 움직임이 다시 보인다. 요즘 자주 보이는 단어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시쳇말로 인싸같은 사람. 브런치에서든 페이스북에서든 어디서든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는 법을 소개하는 글로 가득하다. 반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을 힐난하는 풍조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어 가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투명하고 명백하다. 개인 문제를 티내지 말고, 분위기 망치지 말고 처신 잘하라는 것.
과연 자존감 높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브런치에서 '자존감 높은 사람들의 10가지 특징'이라는 글을 읽어보았다. 열거된 사항 중 다섯 가지는 다른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라고 할 만한 사항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다섯 가지는 특별히 한 번 생각해보고 싶다. 1) 의존하지 않는 사람, 2)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3) 거절을 무서워하지 않는 사람, 4)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 5)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사람.
이러한 성품은 물론 권장할 만한 성품이다. 다른 사람을 보듬기 위해서는 건강한 자존감을 갖고, 유연해질 필요가 있겠다. 그렇지만 높은 자존감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한편으로는 모든 문제를 개인화시켜버리는 건 아닐지 조금 우려스럽기도 하다. 개인이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이 마땅한 부분도 분명히 있겠지만, 이런 분위기가 과열되면서 한편으로는 자존감 낮은 사람들을 그 자체로 불쾌한 존재로만 인식하게 되는 경향이 조금씩 보인다.
자존감 없는 사람들은 발칵 화를 내곤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믿지 못해 불안해하며, 조금이라도 체면에 손상이 갈 수 있는 상황을 극도로 경계하고, 자신이 집착하고 있는 것에 과도하게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을 놓지 못한다. 또 상대를 깎아 내려서라도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가만 보면 이런 사람들은 안정적인 자아 존중감을 유지할 만한 토대가 없어서 불안해 하고, 성마른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사실 자존감 낮은 사람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상처를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지지대를 찾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 예컨대 의존성이 강하고, 실수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커다란 실패를 경험하고 낙담한 사람일 수 있다. 또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인간관계에서 치명적인 거절을 당하고 상처를 받은 사람일 수 있다. 개인이 안고 있는 상처와 아픔이 많은데, 당장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어라고, 모든 건 다 너의 책임이라고 닥달하는 건 좀 지나친 요구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반복적인 실패와 거절을 경험한 사람이 움츠러드는 것은 당연하다. 밑천 없으면서 무리하게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다가, 오히려 본인의 한계를 자각하고 더욱 깊은 좌절감과 자괴감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이 구조적인 문제, 제도적인 모순, 체계적인 무관심과 결부되면 더욱 힘겨운 문제가 될 수 있다.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보면, 18세기 후반 프랑스 병리학자 필리프 피넬이 세운 수용소의 사례가 소개된다. 이곳 수용소에 수용된 광인들은 철저히 고립되어 절대적인 침묵과 고독을 경험하였다. 푸코의 설명에 따르면 그렇게 타자의 부재와 절대적 고립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광인은 수치심, 열등감, 의기소침, 자책감 등을 느끼게 되고, 자기 자신에 대한 내면적인 죄의식을 만들어 내게 된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 역시 사람들의 배척 속에서 외부에서 가해지는 부조리함에 항의하기 보다 먼저, 자신의 굴욕적이고 못난 자아상을 바라보고 스스로 교정하게 될 것이다. 강도는 다를 지언정 정확히 유사한 매커니즘이 아닌가.
무엇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실패와 거절을 버텨낼 만한 안정적인 심리적 토대가 필요하다. 실직의 위험이 없는 안정적인 직장, 친밀하고 안정적인 인간관계, 당장 모든 게 무너지지 않을 풍족함 등등. 예컨대 나는 집안이 풍족하고 부유한 사람이 어떻게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지 본 적이 있다. 그는 기본적으로 서너 번쯤 사업 실패해도 지탱할 수 있으니 성격이 여유로울 수 있었고, 그 여유로운 성격을 바탕으로 결국 수익성 있는 사업을 이루고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아직까지 넓은 응접실에서 번지던 그 여유로운 웃음이 기억난다.
모두가 그런 사람이 될 수는 없다. 행복과 안정감을 더욱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사회를 꿈꾸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좋지 못한 상황이 달라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지, 좋지 못한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져서 표백된 사회가 되길 꿈꾸는 건 위험하다. 오래토록 그런 사람들은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들과 계속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 모두가 완전한 자존감을 누리는 사회는 한갓된 꿈이라는 점을 받아들이고 문 밖을 나서는게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