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전세나 월셋집을 전전하는 게 가난한 우리 집의 일상이었다. 그때마다 갈 곳 없는 짐들은 버려졌다. 나는 정든 세간살이, 누나가 소중하게 생각하던 아버지의 책상,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던 어릴 적 일기장들은 자꾸만 사라지고 버려지는데, 궁상맞은 가난의 기억만 켜켜이 끌어안고 가장 외진 골목 구석구석을 다니는 게 싫었다.
열 몇 번의 이사 중에서 가장 이상한 집은 갓난아기 막내 동생까지 모두 한 방에서 자야만 했던 낡은 단칸방도 아니고, 요즘이면 '휴거'라고 놀림 받을 낡아빠진 공공임대아파트도 아니었다.
그 집은 왼편에는 무당 집이 있고, 오른편에는 싸구려 여관이 있는 그런 집이었다. 게다가 맞은편에는 장의사집이 있었다. 나는 그 장의사집의 반투명한 유리문 너머의 흐릿하고 어둑한 공간이 왠지 꺼림칙하고 싫었다. 밤중에 희미하게 밝혀진 불이 왠지 더 으스스했다.
언젠가는 흐린 주말 오후, 나는 벽 너머로 비현실적인 흐느낌 소리를 들었다. TV소리도 아니었고, 다른 전자매체에서 나는 소리도 아니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곳에서 울려 퍼지는 흐느낌 소리인 것 같았다. 나는 그게 그냥 옆집 무당이 신내림이라도 받고 우는 소리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사람의 목청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쩌면 정말 무당네 집에 깃들어 있던 한 많은 무언가였을지도 모른다.
또 언젠가는, 늦은 밤에 수능 문제집을 풀다가 건너편 오렌지 빛 불이 밝혀진 여관에서 넘어오는 신음소리를 들었다. 살살하라고 다그치는 여자의 높은 음색. 다음 날 아침 등굣길에 나는 그 여관에서 조심스럽게 빠져나오고 있는 커플을 보았다. 새하얀 피부에 키가 큰 여자가 활기차게 웃으며 전 날 밤과 달리 소심한 자세로 머뭇거리는 남자친구의 팔을 끌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한 번은 늦은 밤 길 건너편 편의점에 가다가 덩치 크고 험악한 양아치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 동네가 그런 일이 벌어지기 쉬운 동네였다. 그 녀석은 지독하게 찌든 담배냄새를 내뿜으며, 차비가 필요하니 가진 돈을 내놓으라고 윽박을 질렀다. 나는 거기에다 대고 사춘기 혈기로 이를 악물고 비켜라고 오기를 부렸다. 솔직히 다리가 후들거렸다. 싸움이 벌어질 뻔 했는데, 다행히 행인들의 만류로 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앞에서는 도망치지 않는 척 한 번 그 녀석을 노려보고 당당한 걸음걸이로 터벅터벅 길을 걸었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골목길로 꺾어들자 죽어라 달렸다. 우리동네 골목에 이르자 무당집에 걸린 요란하고 정신없는 장식들도, 여관 입구의 허전하고 낡은 조명도, 장의사집의 수상쩍은 반투명한 유리로 비치는 희미한 불빛도 모든 게 다 반가웠다.
그게 뭐라고 그런 집이 사랑스러워서 잠자리에 들기 전 짧게 기도를 드렸다. 그런 곳에 살다보면 누구나 철학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