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한다
자경,
정다운
내 이름은 자경
아이를 잃어버렸다
매일 밤 너의 귀 한쪽을 붙들고 울었다
몇 년 간 그 나머지를 기다렸다
나는 그때 다 기다렸다
풀려난 자들을 끌고 와
자르면 자를수록
다른 소리만 들린다
모른다는 얘기 살려달라는 얘기
이봐,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 아이가 가엾다
죽지 않아야 하지만
견디지도 않았으면 한다
나는 타락하게 될까
삼십 분에 한 명씩 아이들이 사라진다
나는 들쑤시고 다닐 것이다
나의 이름은 자경
내가 한다
이 시를 너무 좋아해서
어떤 방식으로든 여자아이를 키우게 된다면
자경, 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견디지 않는 아이가 되었으면 해서,
들쑤시고 다니는 아이가 되었으면 해서.
'자경'이라는 단어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다
한때 이 단어를 자주 떠올렸다
나는 아마도 아이를 낳아 키울 수 없을 테니
자경은 예전에 썼던 소설 주인공에게 붙여준 이름이기도 하다
할아버지가 원래 '아들 자'에 '벼슬 경'을 써서 여자 주인공에게 자경이라는 이름들 붙여줬는데
후에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자'에 '빛 경'으로 개명을 하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그 소설은 결국 완성하지 못했고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지만
자경, 이라는 글을 쓴 적은 있다.
자경 1 自剄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거나 찌름
자경 2 自耕 자기 스스로 논밭을 갈아 농사를 지음
자경 3 自敬 자기 인격성의 절대적 가치와 존엄을 스스로 깨달아 아는 일
자경 4 自經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음
자경 5 自警 스스로 경계하여 조심함
모든 것을 경계하고 자신을 악착같이 지키면서 살았다. 나쁘고 아픈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네가 스스로를 지키지 못해 그런 일을 당한 거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네가 밤 늦도록 돌아다녔잖아 네가 짧은 옷을 입었잖아 네가 먼저 여지를 줬잖아 네가 그 방까지 따라 들어갔잖아 네가 술을 떡이 되도록 마셨잖아 네가 과거에 더러운 짓을 했잖아 그랬잖아 네가 먼저....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경계하는 일이 스스로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걸 우리는 알게 되었다. 스스로를 지키지 못해 그런 일을 당한 거라는 핑계는 더럽고 비겁했다. 우리는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알게 된 만큼 소리쳤고, 우리가 알게 된 것들을 요구했다. 그런 일들은 때때로 외롭고 괴로워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목을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럽기도 하였다. 가장 고통스러우면서도 가장 다행이었던 건 알기 전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벼랑 끝에 있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을 잃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우리 역시 많은 상처를 입었다. 그것은 우리의 각기 다른 생애사가 똑같이 공유하는 공통감각이었다.
괴로움을 끝내기 위해 목을 매려 했을 때, 목을 매기 위한 끈의 구멍이 이상하게도 다른 세계를 향한 입구처럼 보였다. 우리는 모두 미래를 엿본 자들이다.
우리는 우리가 본 미래를 얻기 위해, 그 미래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기 위해 황폐한 땅에 씨를 뿌리고 논밭을 간다.
우리는 그 모든 외로움과 괴로움이
자신의 가치와 존엄을 확인하는 여정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아니, 이미 알고 있다.
구원은 타인의 것.
해방은 나의 것.
나는 내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