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계속 그것들에 관하여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
홍대 앞보다 마레지구가 좋았다
내 동생 희영이보다 앨리스가 좋았다
철수보다 폴이 좋았다
국어사전보다 세계대백과가 좋다
아가씨들의 향수보다 당나라 벼루에 갈린 먹 냄새가 좋다
과학자의 천왕성보다 시인들의 달이 좋다
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
진은영 <그 머나먼> 중
몇년 전 부친이 남극으로 떠났다. 새로운 과학 기지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머리맡에 남극이 도착해 있었다. 펭귄들이 일렬로 뒤뚱뒤뚱 걸어가는 모습, 녹지 않는 얼음과 거대한 유빙, 황제 펭귄의 가슴털을 그렇게 자세히 본 건 처음이었다. 내 휴대폰 갤러리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되었고 다큐멘터리 남극 편에서 들려오는 부친의 나레이션은 대개 '동생 낮잠 자는 거 깨워서 학원은 제때 보냈냐." "얼마 전 빌라 정화조 똥 푼 값 주민들한테 다 받아냈냐." 같은 거였다. 나는 부친으로부터 남극의 지지 않는 태양과 장엄한 빛의 광휘에 대해서, 영원히 녹지 않는 만년설에 대해서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부친은, 건설 현장 막노동 판에서 일하는 부친은, 둘째 딸의 학원비와 똥값을 벌러, 빚을 갚으러 남극에 간 부친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이곳과 너무 가까웠다. 고등학생이었던 동생은 부친이 과학 기지의 연구원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
진은영의 시처럼, '홍대 앞보다 마레 지구가 더 좋았다. 내 동생 희영이보다 앨리스가 좋았다. 멀리 있으니까' 부친이 남극에서 돌아온 이후로도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부친은 여전히 가족들에게 화를 내고, 화만 내고. 휴일에는 4인용 소파 위에 이불을 덮고 드러 누워 자다 깨다 하신다. 모친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회에 있고 동생은 어디 갔는지 들어오질 않는다. 아버지와 단 둘이 식은 국을 떠먹으면서 아버지의 분노를 온 몸으로 받아낸다. 내가 방을 치우면 방을 뒤집는다고 화를 내고 방을 안 치우면 나이도 많은 년이 더럽게 산다고 화를 내고, 교회에 간 엄마에게 화를 내고 한화 이글스가 지는 날마다 역정을 내는 아버지. 부친이 정말로 나쁜 사람이었다면 그는 남극으로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은,
부친이 정말로 남극 과학 기지의 선임 연구원이라면 어땠을까. 녹지 않는 얼음과 만년설에 대해 근사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부친의 얼굴을 가끔 신문에서만 보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부친은 내게 화를 내지 않고 나는 이 글을 쓰지 않게 되었을까. 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
나한테서 멀리 있는 것들은 나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 내게 너무 가까이 있는 것들은 언제나 나에게 상처를 줬다. 녹지 않는 얼음은 지구 반대편에만 있었다. 손에 쥔 얼음은 늘 녹았다.
1월 1일은 동생의 생일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날마다 김행숙의 시처럼 '케이크처럼 우리는 모여 있다. 우리가 너무 가까워서 우리 사이를 지날 수 있는 건 칼 뿐이라는 듯이' 동생은 매년 내게 화를 낸다. 언니는 왜 내 생일을 한번도 챙겨주지 않느냐고. 나는 기억한다. 내가 중학생 때 용돈 오만원을 모아 편지를 써서 빳빳한 새 봉투에 넣고 동생에게 건넨 1월 1일. 동생이 봉투 안의 돈만 꺼낸 뒤 내 눈 앞에서 편지를 휙- 하고 뒤로 던져버렸던 것을. 나는 악에 받쳐서 대답한다. 앞으로도 너한테는 십원 한 장도 내주지 않을거라고. 그렇지만 그건 벌써 십년도 전의 일인데.
올해 신년에 모친은 동생에게 미역국을 끓여준 뒤 서둘러 송구영신예배에 가셨다. 현명한 모친은 자신에게서 머나먼 것을 사랑할 줄 아시는 분이다. 동생은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식은 미역국을 떠먹으면서 생각했다. 나와 너무 가까운 것들은 언제나 내게 상처를 줬고 나는 계속 그것들에 관하여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