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와 성장의 상관관계
'이 노트에는 흉터가 있다. 그래서 이 노트는 세상에서 하나 뿐이다.'
나는 평소에 문구류를 사 모으는 걸 좋아해서 자주 문구점엘 간다. 몇년 전 문구점에서 어떤 노트를 발견했다. 내가 좋아하는 색의, 하드커버 노트. 단 한 권 남은. 여느 때 같았으면 주저없이 그 노트를 집었겠지만,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 하드커버 노트에는 마치 열상처럼, 자상처럼 긴 흉터가 나 있었다.
그 노트 앞에서 10분은 서 있었던 것 같다. 나는 결국 그 노트를 샀다. 노트의 첫 장에 이렇게 썼다. '이 노트에는 흉터가 있다. 그래서 이 노트는 세상에서 하나 뿐이다.' 최근에 방 정리를 하면서 그 노트를 발견랬다. 몇년 전에 썼던 그 첫 장 이외에는 아무런 글도 없었다. 나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그 노트에는 손이 가지 않았던 거다. 그 노트는 그냥 버렸다.
나는 종종 내가 상처나 흉터를 통해 성장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은, 그게 다 착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냥 내 삶은 이전과 이후로 나뉘었을 뿐이고 더는 돌아가지 못할 순간이 생겼고 거기에서 얻는 상실감을 '성장'이라고 부르며 위로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기 때문에.
나는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는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지점은 나아가기 전에 멈칫, 하는 그 순간이다.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간 나보다 잠시 멈칫하는 순간의 내가 진짜 더 나같다. 잠히 멈춰서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가 왜 이 지점에서 멈추었는지를 생각하는 순간의 내가 진짜 더 나같다.
그런데 요새는 잠깐 멈칫, 할 틈 조차 허락되지 않아서, 그런 건 나약한 자들의 사치라고 믿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나는 등을 떠밀리면서 자꾸자꾸 나아간다. 그러다보면 멈춰설 수가 없는데 다들 그걸 성장이라고, 극복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수면제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노트를 버리던 순간에도 나는 잠깐 멈칫했던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노트에 한 줄도 더 못 썼다. 자상처럼 깊은 구김이, 흉터가 있던 그 노트를 나는 도저히 아무렇지 않게 쓸 수가 없다. 상처는, 그냥 상처다. 아픈 건 그냥 아픈거다. 오년 전에 다쳐도, 십년 전에 다쳐도 계속 아플 수 있다.
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의 상처야. 라고 다독거려도 훼손된 어떤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나를 상하게 하는 것들로부터, 온 힘을 다 해 나를 지킬 것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다치게 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는 털 끝 하나라도 상하지 말자.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