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용기
저는 착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닌 잘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요.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갖기 위해서요.
나는 좀 지나칠 정도로 잘 웃는 사람이었다. 웃기면 웃고 좋으면 웃고 싫어도 웃고 무례한 일을 당해도 웃고 무서운 일이 벌어지면 농담까지 해가면서 웃었다. 일단 매일 아침을 거울 앞에서 웃는 것으로 시작했다. 피곤한 눈매 밑으로 입꼬리만 간신히 위로 끌어올리면 달걀처럼 볼이 방긋 솟아오르는데 그 위에 발그레한 블러셔를 바르면 생기가 돌았다. 정말로 쉴 틈 없이 웃었다. 단순히 빙긋, 미소를 지은 게 아니라 몸을 뒤로 젖히고 목을 뒤로 꺾어가면서 목구멍이 다 보일 정도로 웃어제꼈다. 어느 날 애인이 물었다. 너는 왜 안 웃긴데도 웃어? 그 물음에도 나는 웃음으로 무마하려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처음으로 웃지 않는 법을 배웠다.
웃지 않는 법을 배움으로써 침묵은 단순히 여백이 아닌,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 어떤 흐름이나 분위기, 공기를 만들어내는 묘한 물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백이 싫고 여백이 싫어서 계속 써제끼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백이야말로 실은 가장 두려운 것일지도 몰랐다. 나의 웃지 않음은 침묵의 자리를 발견하고 그 흐름이 이끄는 곳으로 천천히 숨을 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자꾸 웃게 되었다. 웃을 일이 많았다. 웃기는 일이 아니라 웃을 일이었다. 나는 생기 있는 얼굴로 곤란한 상황을 부드럽게 처리하고 무례한 농담을 진짜 농담처럼 만들어버려서 나 자신을 안심시키고(정말 두려움에는 농담만큼 특효약이 없다) 아무튼 정말, 이 글을 쓰는 오늘도 정말 열심히 웃었다. 시집은 언제쯤 가냐는 말에 웃고 여직원은 싹싹해야 한다는 말에 싹싹하게 웃고 희롱과 짓궂은 장난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간신히 웃음 쪽으로 핸들을 꺾어가며 웃고 전화를 돌리며 웃고 전화를 받을 때 웃고 열심히 웃은 값으로 해물찜을 얻어먹었지. 다음 달에는 책상도 살거다. 그래서 내 일기장에 내가 얼마나 웃고싶지 않았는지 한장씩 쓸거다. 매일매일.
내가 어렵게 배운 침묵을 저들과 공유할 수는 없다. 잘 웃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덜컹거리며 머리를 차창에 부딪는 동안 예전에 들었던 작가 선생의 강연이 생각났다. 마치 내 머릿속을 노크하듯이 '고전은 해석의 폭력을 견디고 살아남은 텍스트'라고 했던 말. 나는 고전을 읽는 것이 언제나 어렵고 지루하지만 고전이 어려운 이유는 원래부터 해석을 견딜만큼 단단했거나 수많은 해석을 견디면서 단단해 진 것일테다. 예를 들어 내가 책이라면 오늘 나를 오독한 사람이 '소윤 씨는 겁이 많지? 그래보여.'라고 말했던 것. 아니오 저는
착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닌 잘 싸우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요. 언젠가 당신과 나는 싸우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갖기 위해서요.
생각해보면 나한테 웃기는 일은 별로 없다. 웃을 일이 많을 뿐. 입꼬리의 근육이 필요한 노동. 만약 내가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몸을 뒤로 젖히고 고개를 꺾고 콧구멍이 커지면서 얼굴이 잔뜩 구겨지면서 목구멍이 다 보이는 웃음의 순간이 너무 소중하겠지. 근데 지금은 어떤 순간에 웃어야 할 지 갈피를 못 잡겠다. 고요한 초식동물처럼 침묵의 자리를 잘 찾는 애인만이 나를 웃지 않게 해준다.
웃고 싶지 않을 때는 웃지 않을 용기, 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 그래서 모두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나를 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게 할 것. 기민한 짐승처럼 어디서든 침묵의 자리를 찾아내어 오래 머물 것, 영역을 넓히는 것, 착한 사람도 좋은 사람도 아닌 잘 싸우는 사람이 되는 것, 웃고 싶지 않을 때 웃지 않을 용기를 얻고 지키기 위해서, 결국 내가 싸우게 될 사람들은 매일 내게 웃을 일을 만들어주는 이들일 것이다. 보란듯이 웃지 않을 것이다.
견디자. 총을 쏘기 전에 하늘을 보면 동공이 조여져서 표적이 더 잘 보인다. 하늘은 아주 높고 넓고 견뎌야 할 시간이 그만큼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