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 모르는 꿈에 혼자서
사람의 울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통곡이 아니라
곡과 곡 사이
급하게 들이마시며 내는
숨의 소리였다
박준, <오늘의 식단 - 영에게> 중
누군가와 함께 잠들 때 나는 종종 그 사람과 숨소리를 맞춰본다.
그 사람의 숨소리를 귀 기울여 듣거나, 배 위에 가만히 손을 얹고 그이가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의 간격을 따라가 본다. 나는 잠들 때 깊게 들이쉬고 깊게 내쉬는 편인데 나보다 더 숨을 길게 쉬는 사람도 있고 조금 빨리 내뱉었다가 빨리 들이마시는 사람도 있다.
애인의 숨소리는 나보다 빠르고 조금 거친 편이다. 나는 애인의 숨소리 리듬을 따라가다가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서 애인의 배에 얹힌 손을 떼고 등을 돌려 잠든다. 그런 밤들이 많았다.
애인은 내게 처음으로, 천천히, 깊게 숨쉬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극도의 불안과 우울이 겹치면 가장 먼저 숨이 거칠어진다. 입을 벌리고 밭은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그럴때마다 애인은 침착하게,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고, 거실에 나가서 물을 마셔. 네가 지금 불안한건 어떤 생각을 하거나 상태에 빠져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불안하니까 그런 생각이 들고 그런 상태에 빠지는거야. 내가 지금 불안해서 이러는거야. 라고 생각하고 물을 마시거나 몸을 움직이면 괜찮아질거야. 라고 몇번이고 말해주었다. 내가 휴대폰 너머로 거실에 못 나가겠어, 물을 못 마시겠어. 라고 엉엉 울부짖을때도 애인은 깊은 숨을 들이쉬면서 다시 처음부터 말해주었다. 언제나 저쪽에서 이쪽의 내게 차가운 물 한컵을 마시게 해주었다. 덕분에 오랜 불안과 우울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네가 알려준 명상법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고, 나는 언제나 이렇게 살거라고 비관과 방향 잃은 비난과 폭언과 눈물이 오가는 와중에도 그이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천천히 숨을 쉬고 물 한컵 마시고 움직여보자.
너는 네 생각보다 많은걸 이룬 사람이야.
나는 사실 깊은 숨도, 맑은 물도, 움직이는 몸도 믿지 않았다.
나직한 목소리만을 믿었다.
애인과 7년을 만나면서 그이가 우는것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아무리 슬픈 영화를 봐도, 책을 읽어도, 18년을 키운 강아지 세 마리가 차례차례 숨을 거둘때도.
새로 산 차가 찌그러져도 화 한번 내지 않았다. 그냥 숨을 한번 깊게 들이쉬더니, 이래야 내 차 같지. 라고 웃었다.
자기가 단 한푼도 써본 적 없는 돈을 모조리 빚으로 갚아야 할 상황이 왔을때도, 공부를 그만두고 주 7일로 일을 시작했을때도, 점집에 갈때마다 너는 공부에 매진해야 성공한다는 말을 들을때도 애인은 숨을 아주 깊게 들이쉬고 길게 내뱉더니 농담을 했다.
내가 그 돈을 오만원이라도 써 봤다면 이렇게 억울하진 않았을거야. 그치? 하면서 씩 웃었다.
강아지들은 모두 2017년에 죽었고 애인은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볼때마다 우리 별이도 저러는데, 현재형으로 말한다. 지금까지도.
나는 애인이 이런식으로 모든 일을 극복해나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한결같음을 진심으로 좋아했다.
너는 우는 대신 깊은 숨을 쉬기를 택한 사람이구나. 내가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을때마다 악다구니를 치고 울부짖고 몸부림을 치듯이 너는 아주 깊은 숨을 한번,
애인이 우는 모습은 아마 평생 못 볼 거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도 못 봤다.
딱 한번,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어떤 신문기사를 읽었고 안타깝게 스스로 죽음을 택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았고 몇시간을 아주 서럽게 오열했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공부를 시작해서 남을 돕는 사람이 될거라고, 그런 메시지가 와 있었다. 꽤 오랫동안 답장을 못했다.
내가 아는 가장 선량한 슬픔을 다룰 줄 아는 시인이 이렇게 말했다. 울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울음과 울음 사이에 급하게 들이마시는 숨소리라고.
적막한 밤에 애인의 배 위에 손을 얹어놓게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 조금이라도 호흡이 빨라지거나 가빠지거나 하면
얘가 나 모르는 꿈에서 울고 있나, 혹은 잇새를 꽉 물고 울음을 참고 있나.
나는 너한테 안겨서 밤마다 자주 울었는데, 어둠 속에서 찐득찐득한 손으로 네 얼굴을 찾아 마구 더듬었는데, 너는 내 콧물도 말없이 잘 닦아주었는데, 덕분에 나는 긴 호흡으로 잘 수 있게 되었는데.
너는 나 모르는 꿈에 혼자서
밭은 숨을 들이마시면서 우는걸까. 그런데
너는 내 얼굴을 만지지도 않고 콧물을 흘리지도 않고 조금 입을 벌린채 쌕쌕대며 자고 있어서 나는 그냥
등을 돌리고 잔다.
등을 돌리면 벽이 있다. 벽도 숨을 쉴까, 손바닥을 대보면, 차다.
그런 밤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