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듣지 않는 연주를 살면서 두 번 들은 적 있다
공원
반년 전, 한창 공부를 할 때 저녁마다 도서관에 갔다.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였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드는 계절이라 해가 점점 빨리 지고 있었다. 도서관을 가려면 공원을 지나야 했는데 그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통기타와 할아버지, 때로는 그냥 할아버지, 그날은 통기타와 술병과 할아버지.
벤치 옆에는 코트가 있어 남학생들은 매일 농구를 했다. 할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로 통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취한 손가락은 어떤 코드를 짚어야 하는지 어떤 줄을 튕겨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나는 지금도 그가 어떤 곡을 쳤는지 알 수 없다. 원래 있는 곡인가? 자작곡인가? 아니면 즉흥곡? 할아버지가 연주를 하거나 말거나 남학생들의 농구는 끝나지 않았다. 남학생들의 고함이 기타 소리를 완전히 묻어버렸다. 그때 그가 소리를 질렀다. 남학생 몇을 합쳐놓은 것보다도 더 크게.
내 노래를 들어라. 이 개새끼들아. 씨발놈들아.
농구 경기는 중단되었고 공원을 지나치려던 나는 멈춰섰고 이 상황에 익숙한듯한, 혹은 피부에 닿는 모든것이 권태로운 듯한 아주머니가 지나가면서 쯧쯧, 혀를 찼다.
저 양반은 매일 똑같은 것만 치네.
잠시 후 남학생들이 왁자하게 웃으며 야유가 섞인 환호성을 내질렀다. 할아버지 개멋져요. 노래 잘하시네요. 띵곡이네. 소년들은 사라졌고 공원은 더 어두워졌고 통기타와 술병과 할아버지는 벤치 위에 있었다. 정물처럼.
나는 할아버지의 형편 없는 기타 연주를 녹음했다. 친구에게 이 풍경을 담은 소리를 들려주려고. 야 이거봐라. 우리 동네에 이렇게 미친 사람도 다 있다. 하면서. 그런데 누군가에게 들려준 적은 없다. 대신 나 혼자 듣는다. 밤에, 가끔
평생 형편없는 곡들만 연주했을 낡은 통기타와
추레한 초로의 행색
어둠 속에서도 야만스러울 정도로 시퍼런 청춘과
이 풍경에 너무도 익숙한 사람의 탄식
을 밤에, 가끔 생각날 때마다 듣는다. 이 모든 소리와 소리가 불러오는 풍경들과 풍경의 한가운데에서, 이 저녁의 풍경을 어떤 안타까움의 순간으로 고정시켜버린, 연민의 순간으로 장악해버린,
술취한 늙은이의 끔찍한 기타연주를 듣고있으면 나는 계속 그날의 저녁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영원히 완성되지 못할 미완의 곡 같아서, 코드조차도 제대로 못 잡고 계속 헤맬 것 같아서.
이 노래를 들어라. 개새끼들아. 씨발놈들아.
그런 형편없는 연주를 도대체
누가 들어주나요
어두운 공원에 서서
혼자 중얼거리면서.
모 베터 블루스
7년 전의 나는 걷는 것을 좋아했다. 나와 애인은 시간과 젊음을 헤프게 쓸 수 있는 대신에 가난했다. 우리는 걷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래도 좋았다. 정말. 뭐가? 하고 묻는다면, 모든 것이.
몇시간을, 지칠 정도로 아주 오래 걷다보면 나중에는 다리가 사라지고 몸이 둥둥 뜨는 느낌이 났다. 그게 또 좋아서 계속 걷다가 막차시간을 놓쳐버렸다. 우리는 서로 사는 도시가 달라서 집까지 걸어갈 수는 없었기에 계속 걸었다. 걷다가보니 밤은 밤을 지나서 심야를 향해 들어가고 있었고 우리는 한강에 왔다. 한강.
밤에는 수면이 너무 어두워서 물이 거기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물 위에 비치는 빛들을 보고 거기 물이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우리가 그런 사이일거라고 믿고 있었다.
무슨 대교를 건너다가 나는 걔가 너무 좋아서 앞서 걷고 있던 걔를 멈춰세우고 입을 맞췄다. 아주 깊은 밤이었고, 아무도 없었고, 아주 잠깐 닿은 입술을 살짝 뗀 순간,
지금도 거짓말 같다고 생각하지만
어디선가 모 베터 블루스를 연주하는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다. 숨이 달려서 음은 뚝뚝 끊기고 손가락을 잘못 짚어서 음이 어긋나기도 하고 색소폰 초보의 아주 형편없는 연주였지만, 분명히 모 베터 블루스였다.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이런 시간에, 밖에서. 분명 그 누구의 잠도 깨우고 싶지 않았던 선량한 마음이겠지. 우리는 어둠속에서 막 웃었다. 정말 거짓말 같지? 누굴까? 이런 시간에 색소폰을 부는 사람은. 정말 거짓말 같지? 이런 순간은.
그때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이렇게 몇 천 밤을 걸으리라고 믿었고, 그 밤을 통과하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