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사랑하는 것이 하나 더 늘어버렸다.
아주 조그만 눈도 못 뜨는 널 처음 데려오던 날
어쩜 그리도 사랑스러운지 놀랍기만 하다가
먹고 자고 아프기도 하는 널 보며
난 이런 생각을 했어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궁금한 듯 나를 바라보는 널 보며
난 그런 생각을 했어
아주 긴 하루 삶에 지쳐서 온통 구겨진 맘으로
돌아오자마자 팽개치듯이 침대에 엎어진 내게
웬일인지 평소와는 달리 가만히 다가와
온기를 주던 너
지금 이 순간 나는 알아 왠지는 몰라 그냥 알아
언젠가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너의 시간은 내 시간보다 빠르게 흘러가지만
약속해 어느 날 너 눈 감을 때 네 곁에 있을게 지금처럼
그래 난 너로 인해 많이 울게 될 거라는 걸 알아
하지만 그것보다 많이 행복할 거라는 걸 알아
궁금한 듯 나를 보는 널 꼭 안으며
난 그런 생각을 했어
가을방학 - 언젠가 너로 인해
어렸을 때, 친척집에서 키우던 큰 개가 나를 향해 짖었다. 놀란 나는 경기를 일으키며 쓰러졌고 그때부터 개를 무서워했다. 애인의 집에 처음 갔을 때 종종종 뛰어오는 강아지 세 마리 앞에서 나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그러나 그 요키 세 마리는 애교가 많고, 영민하고, 무엇보다도 애인의 오래된 가족이었기 때문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애인이 강아지를 키운다는 것에 한번 놀랐고, 세 마리나 키우는것에 두번, 강아지와 함께한 시간이 강아지가 없던 시간보다 더 길었다는 것에 세번 놀랐다. 나에게 애인은 좀 건조하고, 세파에 시달리면서 만사에 무관심해졌다는 느낌을 주었으므로 애인이 작고 약한 무언가를 애정을 담아 키우는 걸 상상하기 힘들었다. 확실히 애인은 언제나 무심하게 말했다. 걔넨 그냥 내 가족인데. 너무 당연해서 들뜸이나 설렘도 없는 목소리로.
애인은 늘 물가 근처에 살았어서 우리는 그쪽을 자주 걸었다. 요키 세마리는 그때도 이미 10년을 넘게 산 노견들이어서 오래 못 걸었다. 한적한 강가에서 애인이 지친 강아지 둘을 옆구리에 끼고 한마리는 애인의 뒤를 따르며 천천히 걷는 풍경을 나는 좋아했다. 물이 맑았던 여름,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작은 초록색 버스가 물가 앞 버스정류장을 이십 분에 한 번씩 오갔다. 우리는 그 버스를 탈까 말까 고민했지만 대체로 강아지들과 함께 물가를 걸었다.
가족들에게 두루두루 사랑받던 건 첫째 요키였고 애인의 어머니가 유난히 아꼈던 건 셋째 요키였다. 작고 약한 것의 몸에 뺨을 부비면서, 별이는 다음에 사람으로 태어나면 시인이 될거지? 어머니는 늘 사랑스럽게 물었다. 애인은 둘째 요키를 가장 챙겼다. 가족들이 둘째 요키를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대했기 때문이었다. 둘째 요키는 요키 세 마리들 중 가장 오래 살았다. 요키들이 한 마리씩 차례차례 떠나갈 때도 애인은 울지 않았다. 대신에,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를 볼때면 늘 이렇게 말했다.
어, 우리 담비도 저러는데.
현재형으로.
우리 별이도 좀 저런 편이지?
1년이 지나도, 그렇지만 둘째 요키를 떠올릴 때는 잠시 망설이다가
뚜비 보고 싶다.
애인은 동생들이 죽고서도 단 한번도 울지 않았지만, 나는 그 사라짐 속에서 애인의 어떤 시절이 끝나버렸다고 생각했다.
요키들이 죽고 1년 후 쯤에 애인이 어린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왔다. 애인의 동료가 자취방에서 키우다가 본가로 들어가면서 파양하게 된 개였다. 흰색 말티즈, 한살이 조금 안 된. 얼마 후에는 유기견이었던 푸들도 함께 살게 되었다. 역시 어린 강아지였다. 강아지들은 애인을 금방 주인으로 받아들였다. 애인이 워낙 능숙하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 같이 살던 사람처럼,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애정을 주면서도 강아지들 각자를 존중했다. 먼저 다가가지도 않았고 천천히 다가오면 가만히 손을 뻗어 냄새를 맡게 했다. 절대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강아지들을 막아야 할 때는 몸을 돌리거나 부드럽게 밀었다. 강아지들이 자기 자리로 돌아가면 붙잡지 않았다. 대신에 야근을 하느라 밤늦게, 심지어 새벽에 들어와도 산책을 했다. 강아지들은 애인을 아주 잘 따랐다.
그렇지만 나는 좀 고군분투했다. 말티즈는 나를 보면 미친듯이 짖으면서 오줌을 쌌고 푸들은 나를 투명인간처럼 본체만체했다. 울상인 내게 애인은 간식통을 주며 앞으로 집에 올때마다 하나씩 줘, 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리드줄을 쥐어주었다. 몇달 후 말티즈가 산책을 하면서 내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돌아보기 시작했다. 악몽을 꾸고 달달 떨면서 깬 날 밤 속에서 푸들이 다정하게 핥아주었다.
애인은 강가에서 자주 말했다. 세상에서 아무 생각없이 넋놓고 볼 수 있게 되는 게 물이랑 불이라고, 나는 물과, 애인과, 작은 요키들을 넋놓고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의 감정은 오로지 평화, 아무도 해치지 않고 아무것도 해칠 수 없는 풍경이 주는 평화로움 뿐이었다. 작접 리드줄을 잡고 강아지들이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짖을때마다 황급히 줄을 당기면서 사과하고 똥을 치우고 발을 씻기고 털을 빗기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강아지들은 내게 더 이상 풍경이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애인과 여행을 가거나 번화가로 데이트를 가지 않았다. 대신에 집에서 강아지를 씻기고 귀청소를 해주고 함께 잠들었다. 내가 설핏 잠들때쯤 탁탁탁탁, 발톱과 바닥이 가볍게 부딪히는 발소리와 함께 다가와 몸을 붙이고 누워 코를 고는 작고 부드러운 감촉이 좋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애인과 헤어지게 된다면 강아지들을 못 보게 된다는 생각에 공포스러워졌다. 만약 우리가 헤어진다고 해도 강아지들은 계속 보게 해주면 안될까? 물었을 때 애인은 말도 안된다는-우리가 헤어진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투로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하고 웃었다. 우리가 함께 작고 부드러운 것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울 때마다 나는 애인과 당장 결혼할 수 없음을, 결혼하게 되더라도 그건 아주 나중의 일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가 결혼한 사이라는 착각이 들곤 한다. 함께 어린 것을 돌본다는 두렵고, 조마조마하고, 귀한 감각.
말티즈와 푸들에게는 각자 이름이 있지만 애인은 그냥 '돼지'와 '푸들'이라고 부른다.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는건 뭘까? 나는 세마리 요키들을 조심스레 떠올려보지만 애인은 역시 무심하게, '그런건 별로 안 중요해'하면서 우렁차게 푸들아 돼지야 부른다. 인적 없는 강가에서 목줄을 풀어놓고 정신없이 냄새를 맡던 돼지와 푸들이 저 멀리서 뛰어온다. 애인에게는 딱히 더 중요한 것이 없다. 모든 순간이 공평하게 치열했고 절박했고 진심은 언제나 너른 땅처럼 평평하므로, 나는 가끔씩 애인의 마음에 돌올하게 솟은 뿔이 되고 싶거나 오목하고 안락한 틈 속에 스며들어 숨고싶다고도 생각하지만 그러다가도 애인의 곧고 평평한 등을 좋아하게 되고 맑고 순한 풍경을 사랑하게 되고 아무것도 필요없고 무엇도 중요하지 않은 온전한 순간이 있다고 믿게 된다.
강가에서, 모든 것을 물 위에 새기는 것처럼 바라보는 애인과
애인의 뒤를 열심히 따르는 강아지들.
그래서 애인이 강아지 오줌을 싹싹 닦는 나를 보고 무심코 내뱉은 말에 슬퍼져버렸다.
너도 이제 애견인이 다 되었구나.
애인은 모든 것을 흐르는 물 위에 새기고 가만히 지켜보지만
나는 흰 종이에 검은 잉크를 흘려넣으며 쓰는 사람이므로,
아, 사랑하는 것이 하나 더 늘어버렸다.
그러면 아주 먼 훗날에 이 노트를 펼쳤을 때,
작고 축축하고 다정한 감촉을 떠올리면서
아주 많이 울게 될 날이 올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