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인 나를 좋아하고 싶어졌다
나는 그림 그리기를 아주 싫어한다. 그림을 감상하거나 친구의 그림을 칭찬하는 건 좋아하고 기껍지만 그림을 그려보라고 흰 캔버스와 붓과 물감과 팔레트를 준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하얗게 굳어버리고 말 것이다. 평생 아무것도 그려질 일 없는 빈 캔버스처럼.
⠀⠀⠀
어쩌면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그림 그리기를 증오해서일지 모른다. 그때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필연적으로 두 갈림길 앞에 서야만 했다. 예를 들면, 환경보호 포스터 그리기 대회와 환경보호 글짓기 대회. 너는 어디 나갈래?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했다. 6년 내내 한 길로만 가다보니 어쩌다 상도 받고 칭찬도 들었다 그림을 못 그리는 애에서 글을 잘 쓰는 애가 됐다. 그래서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고 증오하고 두려워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
작년 이맘때쯤 읽었던 소설 <활자 잔혹극>의 첫 문장. ‘유니스 파치먼은 읽을 줄도 쓸 줄도 몰랐기 때문에 커버데일 일가를 죽였다.’ 나는 어떤 순간에 이 문장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
특유의 예민하고 섬약한 유리신경 때문에 늘 히스테리를 부리던 모친에게 펜과 일기장을 선물해 준 적이 있다. 잠들기 전에 뭐라도 쓰면 좀 나아질 거야. 며칠 뒤 나는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모친의 딸이 아니었다면, 모친은 나를 죽였을까?
⠀⠀⠀
언제부터 그림 그리기를 증오하게 된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최초의 기억이 있다. 손에 이제 갓 힘이 들어가 겨우 펜을 쥘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최초로 사람 그림을 그렸다. 동그란 얼굴에 웃는 표정, 옆으로 흐물흐물하게 뻗어 나온 양팔과 얼굴 바로 밑으로 힘없이 뻗은 두 다리. 흡사 만득이에게 팔과 다리를 달아준 것 같은 형상이었다. 소윤이 빚은 최초의 사람을 본 모친 가라사대,
⠀⠀⠀
왜 사람 머리에서 팔다리가 나오니? 어깨도 없고 몸통도 없고 이게 무슨 사람이야.
⠀⠀⠀
나중에 동생의 첫 그림이 이와 비슷했을 때, 그 나이대의 애들은 대게 이렇게 사람을 그린다는 것을 모친도 알게 되었을 때, 동생이 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을 타왔을 때, 모친은 조금 후회했던 것 같다.
⠀⠀⠀
모친은 언제부터 한줄도 쓰지 않는 사람이 되었을까? 추측컨대 내가 최초의 사람(만득이)를그리고 2,3년 후 쯤 있었던 일 때문인 것 같다. 당시 나는 그림은 못 그리지만 받아쓰기는 매번 100점을 받아와서 몹시 기고만장해져 있었다. 그래서 알림장의 학부모 확인란을 고심해서 채우고 있던 모친에게 이렇게 말해버렸다.
⠀⠀⠀
엄마, 열락이 아니고 연락이야. 읽을 때는 열락이지만 쓸 때는 연락이야. 엄만 왜 그것도 몰라. 그때부터 학부모 확인란은 내가 어른 글씨를 흉내 내며 채웠다. 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
나중에 모친의 이름이 ‘소희’여서 펜팔 상대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다는 것과 모친이 매일 하루 일기를 음성으로 녹음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인터넷에 올라오는 맞춤법 서투른 엄마와 다정하게 나눈 카카오톡 캡쳐를 볼 때 나는 많이 후회를 한다.
⠀⠀⠀
이 모든 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자란 동생은 국어국문학과에 재학 중이며 취미로 그림을 그린다.
⠀⠀⠀
입사한 지 2주째, 작은 실수라도 했다 치면 앞뒤가 벼랑이다. 행정상의 착오로 사생대회에 참가해 언덕 위에서 스케치북을 껴안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초등학생 소윤의 마음이 된다. 인수인계를 3일 받았고, 직접 정리한 업무 매뉴얼이 오늘부로 글자크기 10pt로 A4 여섯 장이 넘어갔고, 하루에 100통, 200통이 넘는 서류를 검토하는데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낸다면 나는 그 직장에 있기엔 너무 아깝다. 실수는 당연하고 실수를 안 하는 게 더 공포스러운 일인데 매번 주눅이 든다. 텐션이 갈수록 낮아지고 눈에 띌 만큼 우울해져서 며칠 간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오늘 회사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왜 내가 좋아하는 일은 내가 잘하는 일 뿐이지?
왜 내가 싫어하는 일은 내가 못하는 일 뿐이지?
⠀⠀⠀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초등학생인가 중학생 때, ‘악튜러스’라는 RPG 게임을 플레이 했었다. ‘악튜러스’는 극악의 맵 난이도로 악명이 높았다. 며칠 동안 맵 하나를 빙빙 돌다가 결국 마우스를 집어던지고 악을 쓰며 욕을 하고 울었다. 그 전까지 나는 문방구에서 일주일에 하나씩, 쥬얼판 게임 씨디를 사고 일주일 용돈을 다 써버려서 일주일마다 두들겨 맞으면서 울었다.
⠀⠀⠀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노래방에 자주 갔다. (가장 인상 깊은 평 : ‘노래를 정말 잘 그리시네요.’) 일주일에 두세번 갔는데 노래방 메이트도 따로 있었다. 만나면 아무 것도 안 하고 노래방으로 직행 두 시간, 세 시간 노래만 불렀다. 언제부턴가 나도 그 친구도 노래방을 잘 안 가게 되었다. 그 이유는.
⠀⠀⠀
1. 내가 담배를 많이 피워서 목소리가 갈라졌기 때문에.
2. 오디션 및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내가 노래를 그렇게까지 잘 부르는 편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3. 노래방 메이트가 본격적으로 보컬 트레이닝을 받으면서부터.
⠀⠀⠀
우리가 자주 가던 스카이 노래방은 지금도 있을까?
⠀⠀⠀
그렇게 좋아한다는 글쓰기로도 벌어먹고 살지를 못해서 꾸역꾸역 돈 벌고, 내가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은 갈수록 사라지게 될까?
⠀⠀⠀
글을 쓰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기 시작한지는 사실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는 글을 쓸 때마다 이런 느낌을 받았다. 행정상의 오류로 사생대회에 출전한 소윤이 여차저차해서 다시 백일장 장소에 복귀했지만 주어진 시간 중 절반이 지나있고 다들 구슬땀을 흘리면서 한창 글을 쓰고 있는데 이제 막 내게 펜과 원고지가 주어진 듯한, 언제나 조급하고 아연한. (물론 사생대회에서 백일장으로 복귀했다는 것에 안도감이나 은근한 기쁨도 있지만), 나는 하루에 1500자를 안 쓰면 그 다음 날에는 3000자를 쓴다네. 무조건. 대문호 헤밍웨이의 말씀이라던가, 소설가는 예술에 복무하는 작품을 내놓지만 그 창작의 과정은 매일 반복되는 공무원이나 사무원 같아야 하는 거야, 라고 역설하셨던 나의 은사님. J 소설가. (언행일치를 실천하는 사람들의 말에는 어마어마한 파괴력이 있다.) 선생님들. 왜 저를 다시 백일장으로 데려온거예요? 그냥 만득이 그림이나 그리다 망신당하게 내버려두지!
⠀⠀⠀
만득이 그림이 뭐 어때서.
⠀⠀⠀
그리고 나의 온화하고 현명한 애인은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못하는 걸 좋아해보고 싶다. 엉망진창이지만 즐거워보고 싶다. 엉망진창이지만 즐거운 나를 긍정해보고 싶어졌다. 연습하지 않고 더 나아질 거란 기대가 없어도, 목표에 따른 계획이 없어도, 그 순간만큼은 즐겁게 엉망진창이 되어보고 싶어졌다.
⠀⠀⠀
어렸을 때 피아노를 배웠다 선명하게 기억난다. 손 안에 알을 쥔 것처럼 동그랗게 한 채로 건반 위에 손을 올려야 한다는 걸. 그때의 나는 연약한 알을 깨트리지 않고 쥐는 법을 몰랐다. 손 안의 투명한 알은 언제나 박살이 났을 것이다. 연습량을 체크하는 연습일지에 피아노를 세 번 쳐놓고선 다섯 번을 쳤다고 체크하고 맨날 나가서 놀았다. 피아노 치는 것도 싫어졌다. 이제는 진짜 계란을 건반 위에 올려놓고 깨트리며 피아노를 쳐도 누구도 혼내지 않을텐데. (물론 피아노가 자기 소유라는 전제 하에.) 다시 피아노를 배워봐야지, 결심했으면서도 어째서 ‘그때 내가 체르니를 몇 번까지 쳤었더라? 다시 바이엘부터 시작하면 금방 따라잡겠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럼 또 싫어하게 될텐데. 피아노를.
⠀⠀⠀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고 말씀하신 공자님. 저는 아는 자와 좋아하는 자보다 못해도 좋으니까, 더 나아지지 않고, 더 나아가지 않고 엉망진창 속에서 엉망진창을 만드는 엉망진창인 나를 좋아해보고 싶어요.
⠀⠀⠀
만득이 그림을 수천 장 그려도 누구도 비웃지 않는 사생대회에서.
내일이면 후회하고 불에 태워야 하는 글만 쓰는 백일장에서.
몸에 진흙을 바르고 흙탕물을 참방참방 튀기면서
벽에 낙서를 하고
요거트를 몸에 치덕치덕 바르면서 웃는 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