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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Jun 18. 2020

다정한 재의 기록

8년 간의 연애가 끝났다


다정한 재의 기록

8년 간의 연애가 끝났다.

돌아서는 마음조차 다정한 그 이는 내가 혹시라도 슬픔에 겨워 삶을 내던지는 건 아닌지 마지막까지 걱정했다. 이별한 다음 날 전화가 왔다. 나는 다행히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고 출근도 잘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이는 마지막까지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잘 되기를 기원했다. 고생했어. 그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글을 쓴다. 나는 그이를 처음 보자마자 나와 비슷한 동류의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다정함에 재능이 없는 사람. 다정함은 재능이고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정함에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다정하려고 할 때는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안간 힘을 써야 한다. 나는 그이의 그 안간 힘을 사랑했다. 매끈하고 유려한 다정함보다, 안간 힘을 써서 건네주는 그 서툴고 모난 다정함을 사랑했다. 비록 모서리에 찔려 상처가 날 지라도.

어떤 눈 밝은 이가 그의 안간 힘을 알아줄까. 무뚝뚝하지만 선량한 품성을.

나는 우리가 (이제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마주보고 서 있지는 않지만 언제나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달리고 있다고 믿었다.

알고보니 그 길은 평행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만난 적도 없었던 것 같고, 앞으로 만날 수도 없을 것만 같다. 아니, 헤어지고 나서야, 이제야 그이를 다 만난 듯한 느낌이 든다. 한 사람의 가장 밝은 양지와 가장 어두운 협곡 안을, 가장 뜨거운 끓는 점과 가장 차가운 어는 점을 전부 샅샅이 훑고 통과한 느낌이다. 어떤 통과 의례를 거치는 것 같다. 질곡이 많았다. 8년이라는 시간은 물리적으로도 꽤 길다.

그이는 헤어지면서 내게 부탁했다. 앞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지 말아달라고.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러나 앞으로 내 문장들은 그이에게 닿을 일이 없으니 나는 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모든 문장들이 길을 잃었다. 내 문장들은 실은 모두 한 방향으로 쓰이고 있던 것이다. 밤하늘의 모든 별자리가 사라진 것 같다. 나침반이 없던 시절, 사람들은 별자리를 보고 길을 찾았다. 이젠 내게 길잡이가 되어줄 별도, 별과 별 사이를 이어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도 없다. 모든 이야기가 사라졌다. 어둠에는 방향이 없다.

내가 지금 쓰는 글이 연서인지 유서인지조차 이제는 모르겠다.

어둠, 방향 없는 어둠. 내게는 그런 어둠이 있다. 내 어둠은 단순히 빛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었다. 나의 신은 나를 빚을 때 빛이 있으라 말하지 않고, 어둠이 있으라, 고 말했다. 내 어둠은 그 자체로 자생하는 어둠이었다. 신이 내 어둠을 다루는 감각은 너무도 민감해서, 잔인다.

그러나 그이는 내 어둠을 '빛이 없는 상태'라고 믿었다. 지금도 그이가 내게 건네준 빛들은 소중하다. 내 신의 부드러운 어둠 감각 때문에 그 빛이 빛을 낼 수 없었을 지라도.

그러나 한때는 나도, 빛으로 가득 찬 적이 있었다. 너무 뜨겁고 너무 밝아서 빛은 빛 스스로를 보지 못한다.

눈 안의 빛 때문에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 2012년, 한강 공원.

빛도 별도 다 사라진 어둠 속에서, 신의 섬세하고 예민한 어둠 감각 속에서 나는 쓴다. 나는 충분히 어둠으로 살아갈 수 있다. 내 눈은 암순응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단 한 번 담은 빛 때문에 영영 눈이 멀어버린다해도 그때는 좋았다.

좋았다. 모든 것들이 다.

나는 어째서 손 안에 타오르는 빛을 쥐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최근에 나는 실제로 화상을 입었다. 흉터가 꽤 크게 남았다. 사람의 여린 살을 가진 주제에 어째서 맨 손으로 빛을 쥐어보려 했던 걸까. 그건 어떤 마음이었을까.

기꺼이 손으로 타오르는 빛을 쥐는 마음이 다시는 내게 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손 안에는 이제 다 타고 남은 재가 있다. 희고 부드러운 재. 다 타 버리고 나서야 비로소 손에 쥘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제 내 손 안에 남은 마지막 재의 기록을 쓴다. 나는 다시 암순응 속에서 모든 것을 볼 수 있고,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다.

그이는 흐르는 물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천변에서 한없이 물을 바라보던 뒷모습만은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다 해도 선명할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흐르는 물 위에 새기는 사람. 나는 백지 속에 잉크를 흘려 넣는 사람. 모든 문장을 음각으로 새겨 그 안에 기억을 가두는 사람이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잊어가거나, 기억할 것이다.

나는 금이 갔고, 빛은 그곳으로 들어올 것이다.

책갈피 효과, 라는 말을 만든 적이 있었다. 그이를 생각하며 만든 말이다. 아름다운 순간 속에 그이가 책갈피처럼 꽂혀 있다. 언제든지 쉽게 찾을 수 있게. 그러나 이제 그 책갈피는 낙엽이 부서지듯, 가루가 되어 흩날릴 것이다.

앞으로 내게 불보라처럼 일렁이는 순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이에게서 순간을 배웠다. 순간을 기억하는 법,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기록하는 법, 내게는 그런 순간들이 많다. 그러나 앞으로 모든 시간은 손 틈새로 새어나가는 하얀 재처럼 부드럽게 흘러갈 것이다.

나는 이제 꼭 쥐었던 손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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