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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Aug 19. 2020

정확한 노력과 사랑

정확하게 노력하고, 정확하게 사랑받고, 정확하게 용서받고 싶다.


직장 선배는 내게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소윤 씨, 그런 일에 너무 공력을 쏟지 마세요.
요새는 '정확하다'라는 형용사에 관해 자주 생각한다. 노력에도 방향이 있어야 하는구나. 영점을 정확히 겨냥해야 하는구나. 노력도 '정확하게' 해야 하는구나. 절감한다.

나는 일을 할 때 주로, 지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이 맞는지 나 자신을 설득하고 합리화하는데 어마어마한 공력을 쏟는데, 내가 존경하는 팀장님은 오히려 그런 일에 전혀 공력을 들이지 않는다. 그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가는데 온 힘을 쏟을 뿐. 아주 정확하게 노력하는 사람이다. 빗나가는 법이 없다. 판단은 직관적이고 때로는 동물적이어서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 감까지는 배울 수 없을 것 같다. 정확하게 목덜미를 겨냥하고 무는 예리한 감각, 총을 쏠 때 순간적으로 하늘을 보면 동공이 조여지며 영점을 정확하게 겨냥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총을 쏘기 전 하늘을 바라보면 문득,
구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어
멍하니 하늘만 보고 있게 된다.
나는 여전히 나를 길 위에 세우는 것만으로도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한 자리에서 무언가를 오래오래 지켜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빛을 품은 물결의 흐름, 느릿느릿한 구름의 움직임, 나무를 조금씩 흔드는 바람.
지금 그 사람들은 전부 내 옆에 없다.
그들은 그렇게 한 곳에 오래 시선을 두며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아니, 그들이 무언가를 '보고' 있다고 내 멋대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과 나는 각자의 길을 가게 된 걸까.

얼마 전 스케일링을 받으러 갔는데, 입 속을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이 물었다.
나이에 비해 이가 많이 상했는데 혹시 이를 악무는 버릇이 있나요?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웃었다. 그 후로 어떻게 하면 이를 악물지 않아도 노력할 수 있을까, 며칠 동안 고민했다.
나를 상하게 하는 것만이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오래 지켜보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내 안의 무언가를 훼손시키며 만들어내고, 그런 것들이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흐르는 물결에도, 흔들리는 바람에도, 구름에게도 마음을 너무 많이 기울여서, 기울어진 마음에 스스로 미끄러지기도 했다. 다칠 것을 알면서도, 계속 마음을 기울였다. 그 뒷모습에.

퇴근 후 담배를 피우는데 훅 내뱉은 담배 연기를 허공 중에서 한참 지켜보았다.
그것이 어떤 형체를 띄기를 은연중에 바라면서,
담배 연기는 무언가를 빚어낼 듯 천천히 움직이다가 결국 사라진다.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들은 뒷모습으로만 남았다. 천천히 사라진다. 나는 그 잔상에 온 마음을 다 쏟았다.
나는 왜 우리가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믿었을까.
흐르는 물속에서, 흔들리는 바람 속에서, 흩어지는 연기 속에서 왜 나는 자꾸 무언가를 발견하려고만 했던 걸까.
과녁은 바로 저 앞에 있는데, 무언가를 오래 바라보는 일은 동공을 조이는 목적만으로도 족한데.
사라질 것들이 내게 어떤 답을 줄 거라고 믿으면서.
사라진 것들이 내게 어떤 답을 주지 않은 채로 사라졌다고 믿으면서,
사라짐을 사라짐 자체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어떤 이는 사라짐을 사라, 짐으로 읽는다. 사라의 짐.
나의 수많은 사라들은 그런 짐들을 남기고 갔다.
나는 열심히, 아주 열심히 사랑할 줄 알아. 그렇지만 정확하게 사랑하는 법은 잘 모르겠어.
굳이 무언가를 보려 하지 않고, 찾으려 하지 않고, 자꾸만 네가 아닌 내 마음에 말을 걸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믿는 그대로.
오직 당신을 정확히 바라보았다면 당신은 지금 내 옆에 있었을까.
나는 우리가 같은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당신이 바라보는 것을 나도 열심히 바라보면 언젠가 닿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정확하게 바라봤어야 하는 건, 그 뒷모습이 아니라 까만 눈이었음을. 그 까만 눈이었음을.

그렇지만 나는 언젠가는 담배 연기가 누군가의 얼굴이 되기를 기다리고,
흐르는 물 위에서 누군가의 얼굴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이를 악물고, 그렇게 이가 조금씩 닳아가는 동안
결국 내가 찾던 건 무엇인지 잊어버리고,
다만 남은 것은 기울어진 마음에 미끄러져서
깨지고 다친, 온전하지 못한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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