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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Aug 19. 2020

일의 기쁨과 슬픔 2

너 언젠가는 그 일을 정말로 사랑하게 되겠구나



일 얘기는 쓰지 않기로 다짐했다. 아니, 적어도 1년 차가 되면 한 줄 정도는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제 막 두 번째 책의 편집을 끝낸 6개월 차 막내 편집자니까. 편집의 ㅍ도 모르니까.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다. 요즘 나를 기쁘게, 슬프게, 미치게 하는 건 사랑도 우정도 아닌 일이니까.

일 얘기가 아니면 쓸 게 없으니까!

어쩌다보니 문학 편집자가 되었다. 이제 갓 6개월이 지났다. 아직은 기쁨보다는 슬픔과 괴로움이 더 많을 시기. 아니, 아직 슬픔과 괴로움조차 뭐가 뭔지 몰라 넋 놓고 있을 시기. 예전 직장에서는 사무실 책상도 핑크빛으로 예쁘게 꾸미고 파티션에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이나 귀여운 스티커들도 붙여놓는 등 나름 아기자기한 오피스 라이프를 추구했는데, 지금 내 책상 위는 원고 뭉치와 신간 기획안과 표지 디자인 발주서와 회의록과 기타 문서들이 엉망으로 뒤섞여 질서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수라장이다.

카피 한 줄 쓰기 위해 삼일 밤낮 머리칼을 쥐어뜯고 학교에서 소설을 쓸 때보다 훨씬 더 자주 담배를 피우며(입사 이후 일주일에 한 갑에서 이틀에 한 갑을 피우는 헤비 스모커가 되었다.) 골수까지 뽑아낼 기세로 간신히 짜낸 카피는 늘 반려당한다... 단 한 번 날린 화살이 정확히 과녁의 정중앙에 맞듯, 단 한 줄로 누군가를 그 책의 세계로 이끌어야 하는데... (그래서 무지막지한 노력보다는 정확한 노력이 중요하다.) 벌써 나는 이 일의 슬픔을 설명하는데 열 여섯 줄을 소모했다. 매일 아침마다 흔들리는 지하철 안, '내게도 재능이란 게 있을까?' 와 '그냥 닥치고 시키는 일이나 하자' 사이에서 번민한다.

그럼에도 잔뜩 쌓인 원고 뭉치에서 단연 돌올하게 빛나는 문장을 발견했을 땐, 흐린 강바닥에서 사금을 한 움큼 줍는 것처럼 기쁘고(냉큼 카피에 녹여 써야지!) 날 좋은 한낮, 외근을 나와 작가님과 카페에 앉아 소설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겁고 (나는 낯가림이 무척 심한 편이라 오늘 날씨가 참 좋네요... 라는 말을 50번 정도는 하지만) 작가님과 상의하고 조율해서 소설을 더 나은 방향으로 퇴고하는 일도 보람차고, 무엇보다도 누군가의 '생각'으로만 남아 있던 글을 밖으로 끄집어내 손에 잡히는 물성으로 만드는 일이 가장 벅차다. 독자들이 온전히 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마침표 하나, 쉼표 하나를 지웠다가 쓰기를 반복할 땐 미칠 것 같지만, 막상 책이 나온 걸 보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부장님이 말씀하기를, 작가가 엄마라면 편집자는 유모야. 이제 갓 태어난 글을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재우는 거지. 글을 조금 더 유려하고 명료하게 다듬고, 물성이 된 모습을 계속 상상하면서 표지 디자인 발주서를 쓰고, 글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작가와, 때로는 디자이너와 의견이 충돌하기도 한다. (물론 나의 경우는 의견 충돌이라기보다는 일방적으로 내가 혼나는 것에 가깝다. 특히 디자이너분들, 정말 죄송합니다).

서로 의지가지하는 하나뿐인 동기 편집자가 어느 날 내게 말해줬다. 유튜브에서 봤는데요. 편집자는, 책이 한 권 만들어 질 때마다 끊임없이 문제가 터지잖아요?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래요... 놀랍도록 맞는 말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각자의 상충하는 의견을 사이에서 섬세하게 조율하고, 독자와 글이 만나는 길을 만드는 사람. 그 길에 어떤 색 돌을 깔고 어떤 풀을 심을지 고민하는 사람이 편집자...라고 일단은,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편집의 ㅍ자를 꺼내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13년 차 베테랑 편집자이신 부장님께 '편집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도 쉬이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가장 명쾌하게 해답을 말해줄 수도 있다. 소윤 씨, 일이나 하세요. 라고...

때론 '편집'이라는 행위가 살아 있는 생물처럼 느껴진다. 새 책을 시작할 때마다 갓 태어난 아기처럼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고, 섬세하게 다뤄야 하는.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아주 고유한, 단 하나뿐인 기쁨을 주는 일.

동료 편집자들과 일 얘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건만 된다면 방 하나 잡아놓고 삼박사일 일 얘기만 하고 싶다. 나는 대체로 모든 것에 무기력하고 주어진 일만 시키는 대로 하면서 살아왔는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끊임없이 자신을 벼리고 팽팽하게 유지해야 한다. 긴장의 연속이다. 지금까지 내가 거쳐왔던 직업 중, 가장 나를 슬프게 하고, 미치게 하며, 가장 나를 기쁘게 한다. 무엇하나 끈기 있게 해본 적 없는 나지만 이 일은 가능하다면 오래 해보고 싶다. 글과 관련된 일이라면 나는 나의 소중한 일부분을 얼마든지 내어 놓을 수 있다.

이제 막 두 번째 책이 끝났다. 소외된 이들을 향한 작가의 따뜻하고 올곧은 응시가 돋보이는 소설이다. 이런 카피를 썼다. '누구도 물방울처럼 홀로 울지 않게, 우리는 여기 모여 파도가 되자.' 편집장님께 카피를 보여 드렸다. 소윤! 시를 써봐요! 광고 카피는 아니네요. 결국, 카피는 '유명인사 ㅇㅇㅇ 강력 추천!'으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이 소설이 바위를 뚫는 물방울의 꾸준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두드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도 이 세계에서 홀로 물방울처럼 울지 않도록 따뜻한 파도가 되어 모두를 감는 이야기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이걸... 나만 알면 안 되는데, 모두가 알아야 하는데... 모두에게 널리 알려지고 귀하게 읽혀서 중쇄를 찍어야 하는데...

사실 나는 지금 무척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내 실수로 잃었기 때문이다. 관계에 관해 지금까지 수많은 글을 써왔던 나인만큼, 누구보다도 어떤 '관계'에 깊이 천착하는 나인데, 지금은 몰입할 틈조차 없다. 몰아치는 일과, 일이 주는 기쁨과 슬픔 때문에. 언젠가 나도 여러 권의 책을 꿰고, 연차가 조금씩 쌓이면 '편집이란 이런 것... 일지도 모르겠어요...' 라고 조심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아무튼, 지금은 그저 우당탕 좌충우돌 이리 구르고 저리 깨지는 중이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일의 괴로움과 슬픔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을 때, 나를 가장 잘 아는 소중한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너 언젠가는 그 일을 정말로 사랑하게 되겠구나.'
지금 나를 버티게 하는 한 마디, 괴롭고 속상하고 힘들지만 그건 이 일을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이 일을 건강하게 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 마음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롤모델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생겼고, 마음 맞는 든든한 동료와 선배, 부장님이 있으니 뭐...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내가 내일 죽어도, 책은 나온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가 차갑고 맑은 물에 닿아 화들짝 놀라듯 모든 것이 낯설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이가 물웅덩이에서 찰박거릴 때 튀는 물방울처럼 모든 것이 빛난다. 튀어 오른다. 얼른 이 글의 마침표를 찍고 자야지. 노동하는 육체의 엄격한 규율(피곤하지 말 것, 건강할 것)을 어겨선 안 되지. 그런데 만약 부장님이 이 글을 교정 본다면 어떨까? 첫 문장부터 빨간 펜이 쫙쫙 그어진 뒤, 소윤 씨 이 문장은 대체...

그렇지만 이것만은 확고하게 생각한다. 글을 뛰어넘는 편집은, 아마도 없을 거라고. 내일도 세상에 갓 태어난 글을 읽으러 가야지. 나는 편집자. 누군가에게는 가장 최초의 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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