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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윤 Aug 23. 2020

마음은 약한 짐승

우리는 우리가 되지 못했지만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 잠이 오지 않아 여러 사람들에게 연락을 했다.

처음으로 연락한 사람은 고3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다. 나는 개명을 했고 친구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연락한 내가 나인줄 몰라 처음에는 카톡 프로필 차단까지 했다. 그 친구의 페이스북을 찾아 그간 이러저런 일이 있었다고 소명을 하고, 다단계나 전도, 사이비, 결혼의 목적으로 연락한 것이 아님을 몇 번이나 강조한 후에 오해를 풀었다.
우리는 몇 시간 동안 고3 때 이야기를 했다. 학교 운동장에 깔린 잔디 위로 시간 마다 뿌려지는 스프링쿨러의 물방울, 잉어가 살던 연못, 단풍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서로의 꿈을 묻던 어느 날. 그때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했잖아. 지금 나는 책을 만들어. 친구는 내게 신기하다고 말했고, 뒤이어 안 자? 하고 되물었다. 이제 자야지. 응 잘자. 약간의 아쉬움과 어색함을 남기고 적절한 타이밍에 대화가 끝났다. 나는 글을 쓰는 일과 책을 만드는 일의 차이에 대해 잠깐 생각했다.

두 번째로 연락한 사람은 대학 시절 잠깐 만난 오빠였다. 내가 다니던 대학과 오빠의 집이 지하철 20분 거라 학교가 끝난 후 꽤 자주 만나 술을 마셨다. 가볍게 안부를 묻고, 이젠 둘 다 정말 어른이 되었다고 신기해했다. 나는 21살, 오빠는 23살이었으니. 오빠는 내가 가장 불안했던 시기에 만난 사람이었는데 사실 오빠와의 기억은 대부분 희미하고 다만 몇 가지 생생한 것은 10mg 짜리 블랙스톤체리를 피우던 그가 어느 날 아주 단칼에 담배를 끊었다는 것과, 그가 내 머리를 살짝 누르듯 쓰다듬어 준 적이 있는데 그게 참 위로가 되었다는 것 뿐이다. 지금도 담배 피워요? 내가 물었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면 피우게 된다. 오빠가 대답했다. 오빠는 담배를 피우고 있을까? 8년 만에 아무 목적 없이 연락한 아는 동생. 내가 지금 사람 만나는 중이라 나중에 연락할게. 오빠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연락은 끊겼다.

세 번째로 연락한 사람은 대학 동기 언니였는데 이 언니를 향한 내 감정은 따로 글을 몇 편 더 써야 할 정도로 복잡하다. 역시 8년 만의 연락이었다. '안부를 묻기에는 늦은 시간인데 무슨 일이니' 하고 답장이 왔다.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늦은 시간에 실례가 많았다. 죄송하다. 고 급하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수선한 시국인데다 늦은 시간에 연락이 와 걱정이 됐을 뿐 죄송할 일은 아니야. 우리 안부는 밝을 때 묻자'
나는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렸다. 견뎠다. 내 마음의 짐승을.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햇빛이 정수리 위를 비출 무렵 다시 언니에게 연락했다. 언젠가 언니가 내게 해줬던 말, 너는 발이 공중에 떠 있는 사람 인 것 같다. 나는 그 말이 어쩐지 조금 무서워서 언니를 피했노라고. 꿰뚫린 느낌이 들었다고. 그렇지만 8년 동안 언니 생각을 가끔 했다고 카톡을 보냈다. 그래서 나는 오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듯 누를 때 위안을 느꼈던 걸까? 3cm, 너는 발이 3cm 정도 공중에 떠 있는 사람 같아. 언니는 피부가 희었고 쌍커풀 없는 눈이 물방울 같았다. 언니는 내게 별 일이 없다면 다행이라고, 몸도 마음도 잘 챙기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끝났다. 주말 한 낮, 나는 거실에 누워있었고 햇빛이 내 몸 위를 덮쳤고,
그로부터 주말 내내 자꾸만 무언가를 견딘다는 느낌으로 시간을 보냈다.

늘 평생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았던 사람들 대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이들과 연을 맺게 돼 속마음도 내어놓고 그런다. 그럴 때면 가끔 나는 나 자신을 견디는 기분으로 산다. 은과 C의 이름을 떠올린다. 마음은 약한 짐승이 되어, 톱을 제대로 갈무리하지 못하는 어린 맹수가 되어, 들뜬 마음으로. 고기가 먹고 싶어 제 혀를 짓씹는 우매한 짐승이 되어, 나는 몸을 새우같이 웅크려 말고 버틴다. 마음이라는 짐승을 가두기 위해. 스스로 우리가 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되지 못했지만.

당분간은 어떤 연도 맺지 말아야지.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하는 건 괴로운 일이니까. 은에게선 최근 연락이 왔다.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힘들게끔 세팅되어 있는 사람이 있나봐. 은과는 몇 번 만나 남산을 올랐고 종로를 걸었고, 은이 내가 포함되어 있는 미래를, 어떤 청사진을 다시 그리기 시작할 때 나는 또 다시 마음 속의 짐승을 견디고, 짐승 발자국을 견디고, 빛에 눈 멀지 않기 위해 차라리 눈을 감고 눈을 감으면... 더욱 선명해지는 얼굴이 있고.

일요일에는 하루 종일 책을 읽었다.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이라는 시집이었다. 이 시집을, 그리고 역병이 돌아 아무 곳에도 나가지 못하는 나를 버티며 생각했다.

신은 있다. 분명히 있다. 그 신은 나쁘고 아픈 신. 만물을 절벽으로 이끄고 불행을 주관하는 신. 그래서 내게 평화와 평안이란 그런 신의 전능함을 이겨내면서까지 지키는 것이고, 그래서 소중한 거라고. 예전에 신을 믿다 두 팔이 부러져서 기도를 올리지 못하는 여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주고엔 고짓센, <우리 종족의 특별한 잔인함> 속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1923년 일본에서는 주고엔 고짓센이라는 말이 한국인들을 구별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시집과 동시에 읽고 있는 <소녀 연예인 이보나>라는 소설 속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오키나와 원주민들 중 표준어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자들을 골라잡아 첩자를 색출하였다. 그러니까 단지 자신들과 같은 언어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오키나와 사람들과 조선인들이 똑같이 '주고엔 고짓센'을 발음하지 못해 학살당했다는 것을 안다. 도미야마 이치로의 책 <폭력의 예감>에서 그런 이야기를 읽었으므로, 조선인으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 폭력을 예감하는 신체들. 다른 시공에서 쓰인 세 권의 책이 일렬로 죽 꿰어지는 이상한 겹침의 순간을 경험하고.

나는 주고엔 고짓센, 몇 번인가 중얼거렸고, 나는 죽이는 사람일까 죽임당하는 사람일까 나는 짐승일까 짐승을 가두는 우리일까 다들 어떻게 살아갈까 조금 보고싶은데 이제는 볼 수 없겠지 보게 되더라도 예전같지는 않겠지 나는 내가 이번 주말 내내 무엇을 견뎌왔다는 걸, 그리하여 건너왔다는 걸 알았으며, 신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고히 믿게 되었다. 주말이 끝나간다. 내일도 신의 전지전능한 불행을 이겨낼 수 있기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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