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들기의 기쁨과 슬픔
10개월차 편집자, 이제는 책 만드는 일에 대해 말해봐도 되지 않을까?
어느 날 친구에게 물었다.
인쇄된 텍스트에 대한 신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친구가 대답했다.
내가 그거 책에서 읽었는데…
내년 2월이면 이제 막 1년차 편집자가 된다. 그동안 ‘책 만들기’에 대한 글을 써보려 숱하게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아직 1년차도 안된 내가 ‘편집’에 관한 글을 쓸 수 있을까. 이제 막 가나다라를 뗀 아이가 소설 쓰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근데 생각해보면 가나다라 이제 막 뗀 애가 소설 쓸 수도 있지. 엄청 재밌는 소설을 쓸 수도 있다. 글쓰기에는 자격이 없다. 모두가 글을 쓸 수 있다. 그것이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 다만 그렇게 쓰인 글들을 다듬고 정련하여 ‘책’이라는, 자격을 갖추는 물성으로 만드는 일은 또 다르다.
맨 처음 출판사 입사를 준비할 때는 포부도 당당했다. 분명 자기소개서에 그렇게 썼던 것 같은데… 독자와 편집자와 작가를 잇는 커뮤니케이터가 되겠다고. 누군가의 머릿속, 생각이나 개념으로만 남아있던 글을 손에 잡히는 ‘물성’과 ‘감각’으로 바꾸는 편집자가 되겠다고.
편집자가 된 지 10개월 차, 매일 아침 출근길마다 생각한다.
나무야 미안해…. (사실 우리 출판사는 대부분 ‘그린라이트’라는 재생용지를 사용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인쇄된 텍스트에 대한 신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친구는 대답했다. 책에서 읽었다고. ‘책’이라는 물성은 기본적으로 신뢰의 또 다른 이름이다. 너 그거 어디서 봤어? 책에서 봤어. 이 말 한마디면 설명 끝. 누군가의 머릿속에 생각으로만 남아있던 글, 입에서 입으로, 인터넷 하이퍼링크 사이로 떠돌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올 때 그 글은 ‘책’이라는 자격과 함께 신뢰를 얻는다.
그러니까 ‘책을 만드는 일’이라는 건 누군가의 신뢰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일인 것 같다. 활자 하나하나에 새겨진 신뢰를 지키기 위해. 매일 거북목 자세로 교정지를 들여다보고, 작가님, 이 부분은 사실관계 확인 부탁드려요. 인용문의 출처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구글링을 한 날도 있었고, 외신에서 사용된 기사 사진을 도판으로 쓰기 위해 파파고를 돌려가며 뉴욕 타임즈에 메일을 보내던 날도 있었다….
마침표 하나, 점 하나, 쉼표 하나를 찍었다가 뗐다가 찍었다가 뗐다가, 마지막 검판 파일까지 뚫어지게 쳐다보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고, 수정, 마지막 수정, 막막수정, 최종파일, 진짜진짜최종파일.pdf
그러나 왜 망할 오자는 꼭 인쇄소에 데이터를 넘긴 후에만 발견되는가. 눈알이 빠질 정도로 들여다봤는데, 분명히 인쇄소 넘기기 전에는 없었는데! 선배 편집자는 내게 그럴듯한 가설을 제시해주었다.
오자는 인쇄에 들어갈 때 자연 발생하는 거예요. 일종의 도깨비 같은 거랄까…
얼마 전에는 독자 분께 메일을 세 통이나 받았다. 책을 너무나도 아껴주셨던 독자 분은 세 통의 메일에 걸쳐 책 속의 오자와 문장의 오류를 친절하게 지적해주셨다. 안타깝게도 그 책은 이미 6쇄나 찍은 책이었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답장을 보냈다. 독자님께서 지적해주신 오류는 다음 쇄에 전면 수정해서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7쇄를 찍는 날. 독자분께 전면 수정된 책을 보내드리기로 했다. 기쁜 날이다. 이런 식으로 내 존재감을 드러내면 안 되는데…
작가는 아니지만, 책을 한 권 내놓을 때마다 나는 내 새끼를 세상에 내놓는 것 마냥 뿌듯함 반 걱정 반으로 설렌다. 표지, 내지, 띠지, 카피, 콘셉트 하나하나 내 손을 안 탄 구석이 없으니까. 그러나 선배 편집자들은 늘 말한다. 책과 나 사이에 늘 거리를 둬야 한다고. 글은 작가의 손에 쓰이고, 책은 독자의 손으로 가서 읽히니까. 그러면 나는 작가에서 독자에게, 글에서 책으로, 손과 손이 부드럽게 이어질 수 있도록 가장 부드러운 손짓이 되어야지.
요새는 천의무봉이라는 사자성어를 자주 생각한다. 천사의 옷에는 꿰맨 자국이 없다. 가장 쉽게, 물 흐르듯이 읽히는 책은 가장 공들여 만들어진 책이라는 것을 절감한다. 어떤 작가의 글이 독자에게 가장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편집자는 책 뒤에 몸을 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