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윤 Jan 18. 2021

투병 일지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아픔의 리듬이 있다



내가 가진 것 중에는 오래된 것이 몇 없다. 사람도, 사랑도, 관계도 어느 순간 제 생을 다한 별들처럼 명멸하다가, 아름다운 꼬리를 그리며 졌다. 별처럼 졌기 때문에, 사라진 것들에 크게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지닌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나의 병病이다. 내가 지닌 것 중 가장 오래된 것, 나의 오래된 악우.

이 글의 제목은 투병 일지지만 나는 병과 싸우는 사람도, 병을 극복하는 사람도 아니다. 나는 나를 일종의 ‘조율사’, 혹은 ‘연주자’라고 생각한다. 병과 나, 그리고 세계는 삶이라는 악기의 세 줄짜리 현이라서, 하나라도 줄이 끊어지면 안 된다. 혹은 불협화음이 나면 안 된다. 병을 오래 앓은 사람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아픔의 리듬이 있다.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 나는 나를 환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나는 조율사이자 연주자. 아픔의 리듬을 생의 리듬과 합쳐서 조화롭게 연주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언제나 신경이 예민해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은 투병 일지가 아닌, 생의 악보다. 내가 생을 연주하는 방법, 리듬을 기록한 이야기들.

제2형 양극성 정동장애라는 정식 명칭보다는 흔히들 조울증이라고 부른다. 나는 양극성 정동장애 2형을 앓고 있다. 경조증(가벼운 조증)과 우울증이 번갈아 지속되는 증상이다. 제1형 양극성 정동장애처럼 아주 극적인 조증을 겪지는 않는다. 대개는 우울하고, 가끔 들뜨거나 흥분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꼭 사고를 치거나, 수습하지 못할 일들을 벌여놓거나, 아무 생각 없이 돈을 쓴다. 그런 상태에서의 들뜸은 설렘이나 고양감보다도 오히려 불쾌감에 가깝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 동안 빛이 들지 않는 수면 아래에서 한없이 가라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건져 햇빛 아래에 뚝 떨어트려 놓은 느낌. 그러면 나는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온몸을 퍼덕거린다. 사실, 조증에 대해선 별로 쓸 말이 없다. 돈을 많이 쓰거나 흥분해서 아무 말이나 막 내뱉기는 하지만 일상생활에 크게 지장이 있지는 않다. 사람들은 경조증일 때의 나를 보면, ‘아 저 친구 좀 괴짜구나. 과하게 밝다.’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문제는 우울 삽화가 시작될 때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 오늘 하루의 절반쯤은 예감할 수 있다. 어떤 하루가 시작될까. 궁금함이나 설렘 같은 걸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대개 아침의 기분이 그날 하루를 결정한다. 병은 징후도, 전조도 없이 찾아오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묵묵히 약을 삼키는 것뿐이다.

며칠 전, 출근길이었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10분 정도 걸어갔는데, 역까지 다 와서야 내가 약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비상약을 챙겨오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 무조건 지각을 할 터였다.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약을 먹고, 약을 챙겼다. 최근에는 불안장애까지 겹쳐서 비상약을 꼭 챙겨야 한다. 부장님께 카톡을 했다. 오늘 좀 늦을 것 같아요. 다시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에 조금 울었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왜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면서.

가끔은 처음부터 울면서 깨어나는 날도 있다. 그런 아침이면 나는 완전히 패배를 인정하고 부장님께 전화를 건다. 몸살이 심해요, 생리통이 심해요, 급체를 한 것 같아요. 두통이 너무 심해요. 더 이상 댈 육체적 병증의 핑계가 없을 때 나는 결국 솔직하게 말했다.

조울증이 있어요. 약간의 공황 장애도 있고요.
그 말을 할 때 나는 어떤 영화 포스터의 카피를 떠올렸다.
사는 게 숨이 차요.

출근길 지하철에서 갑자기 극심한 가슴 통증을 느껴 응급실에 실려 간 적이 있다. 그때 생각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아프지는 않았는데. 아프지 않아서 그럭저럭 살 수 있었는데. 요새는 자주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찬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쉰다. 왜 그렇게 한숨을 쉬냐고 물으면, 그냥 웃는다.

처음으로 병증이 도진 건 17살 때였다. 고교 시절의 3년을 온통 앓느라 보냈다.

입원하고, 퇴원하고, 온갖 약들의 부작용에 시달리면서, 어떤 기억은 거머리처럼 달라붙은 채로, 어떤 기억은 완전히 도려내진 채로, 매일매일 낯선 몸을 살았다.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었다. 매일매일, 아무것도 없이 세상으로 홀연히 내던져진 것 같아 두려워 울었다. 매일 새롭게 발밑을 무너뜨리고 다시 쌓는 방식으로 생존했다. 기분이 날뛰었다. 나를 가리키는 좌표가 없었고, 나라는 자아를 꽂아둘 단단한 판이 없었다. 물결 위를 표류하는 식으로, 물결이 물결을 집어삼켜 지난 흔적을 지우듯이, 내게는 역사가 없다. 연대기가 없다. 내 삶은 신이 입김을 분 잭슨 폴록의 그림 같다. 입김에 따라 물감이 이리저리 흩어지듯이 살아왔다. 내게는 밑그림이 없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라는 말은 정말이지 멋진 말이다. 그런 삶을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기분 장애를 앓고 있고 어떤 기분은, 사람을 죽게 만드니까.

고등학교는 간신히 졸업했다. 학교에 가면 나를 비웃는 듯한 환청이 들렸고, 그것이 무서워 우느라 학교에 거의 다니지 못했다. 상태가 극심해서 학교에 가는 버스조차 탈 수가 없었다. 고교 시절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냥… 어느 날은 모친이 같이 죽자고 했다. 같이 죽자고. 울 만큼 다 운 사람의 목소리로. 그때 나는 죽을힘이 없어서 살았다. 죽을힘으로 산 것이 아니라, 죽을힘이 없어서 살았다. 아무런 의지가 없었다. 죽을 의지조차 없었다. 조금 기력이 돌아온 날에는 몇 번 시도를 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생이 얼마나 끈질긴 것인지를 알았다. 죽고 싶지도, 살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다음 생에는 육체나 마음이 없는 것으로,
가능하다면 돌 밑의 이끼, 심해어.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배경 음악,
누군가에게 쓰다 버린 편지지의 편지 한 줄,
그런 것들로 태어나고 싶다고, 삶이 없는 것으로.
시간도 역사도 없는 것으로, 그냥 순간으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을 쓰는 일이 나를 개호하는 일이라고 느낀다. 내 병은 숨겨야 하는 종류의 것이었고, 부모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았으므로 내 자신은 내가 돌봐야 했다.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수단은 글이었다.

18살 때는 상태가 아주 극심해져서 입원했다. 아무거나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니, 간호사 선생님은 심의 끝부분을 부러트려 일부러 다 닳게 한 뭉툭한 연필 한 자루와 처방전, 영수증 따위를 줬다. 그 매끈한 종이 뒷면에 쉼 없이 글을 썼다. 때로는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써서 모으기도 했다. 그 편지를 보냈던가, 보내지 않았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긴 줄이 달린 유선 이어폰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서 일부러 외장 스피커가 달린 mp3 모델을 샀다. 꼭 새벽마다 음악이 듣고 싶었다. 6인실 병동에서. 나는 볼륨을 최대로 줄이고 mp3 스피커를 귀에 꼭 붙인 채 음악을 들었다. 그 소리는 음악이 아니라 ‘징징징징’이나 ‘쟁쟁쟁쟁’에 가까워서, 멜로디라기보다는 진동에 더 가까워서, 나는 이름 모를 ‘징징징징’을 들으며 자주 울었다. 그때 내가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는 하나도 기억할 수 없지만, 손바닥을 타고 여린 진동으로 전해지던 그 울림만은 기억한다.

내 삶은 지금까지도 그때의 여린 진동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병과 생이 교차하는 리듬.
블루투스 이어폰이 처음으로 나왔을 때, 아 이제는 아픈 사람들도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퇴원할 때, 병실 사람들과 한 번씩 포옹을 하고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지만, 나는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위태롭게 살 수는 없어서, 최근에는 주변의 몇몇 사람에게 내 병을 털어놓았다. 나는 정신질환자입니다. 나는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합니다. 나는 자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노력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건 다만 내가 아프기 때문입니다. 저를 특별 취급 해달라는 말은 아니에요. 다만 내가 가끔 몸을 숨길 때, 남들 앞에 나타나지 않을 때, 혹은 도움을 요청할 때, 이 친구는 지금 아프구나. 라고 생각하면 돼요. 감기 몸살을 자주 앓는 사람처럼, 타고나기를 몸이 약한 사람처럼. 그 정도면 돼요. 더 바랄 것이 없어요.

그러자 놀랍게도 병이 열어준 새로운 관계들이 쌓였다. 맨 처음 부장님이 내게 물었다. “내가 조금 더 신경 써 줄 것이 있을까?” 남들이 보기에는 별 다른 이유없이 월차를 쓰고 다음 날 출근했을 때, 입사동기 J는 내게 이렇게 다정하게 말해주곤 했다. “마음에 꼭 필요한 시간을 보내고 왔군요.”

가끔 이유 모를 불안감과 망상에 휩싸일 때가 있다. 대개 주변 사람들이 나를 미워할 거라고 믿는 망상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망상은 몸을 불리고 더욱 견고해져서, 마침내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어버리고, 그런 날이면 나는 침대 바깥을 빠져나가지 못한 채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 그때 처음으로 용기를 내서 연락했다. “혹시, 제가 뭐 실수한 게 있나요? 제가 뭐 잘못한 게 있나요? 저를 미워하시나요? 제가 한 일이 아닌데, 자꾸 제가 무언가를 저지른 것처럼 느껴져요.” 그리고 얼마 후 평온한 상태에서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매뉴얼을 일러주었다. 내가 갑자기 그런 질문을 해올 때마다,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저 이렇게 말해주면 돼요. 아니,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아. 라고.

J씨도, K 팀장님도, 애인도, 내가 물어볼 때마다 대답해준다. 몇 번이고 힘주어 대답해준다. 너를 미워하지 않아.
너는 잘 하고 있어.
내 병의 가장 불행한 점은 이런 다정한 말들을 한 마디도 못 믿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믿는다. 필사적으로, 온 힘을 다해 그 한마디에 매달리듯 믿는다. 가끔은 믿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쉽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믿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나를 미워하지 않아. 그 누구도.
나는 잘 해내고 있어. 아마도.

얼마 전에는 애인이 이런 말을 했다.
넌 내가 만난 사람중에 가장 불안정한 사람이야.
그렇지만 내가 보는 것은 너의 불안정함이 아니야.
너와 비슷한 정도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대개 삶을 내다버리듯 내팽개치곤 해.
그러나 너는, 때로는 네 일상을 내 손으로 부술 지언정,
다시 부서진 일상의 조각들을 긁어모아 어떻게든 재건하고, 어떻게든 살아가.
너는 포기하지 않는거야. 삶을.
그래서 나는 걸 수 있는 거야.
인생을.

오늘도 신의 바람은 어느 쪽으로 불까, 흰 도화지 위에, 내 생의 물감들은 어느 방향으로 흩어질까. 종잡을 수 없는 삶의 리듬은 어디로 튀어오를까.
나는 먼 미래를 그릴 수 없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찾아올 내일 아침조차도 제대로 그릴 수가 없다. 오늘 내 옆에 머물던 사람이 내일은 나를 등질 지도 모른다는 이유 없는 공포 속에서 살아갈 지라도,
나를 개호하고 지키는 것은 오직 글과 믿음뿐이라는 것을.
그것이 나와 병과 이 세계 사이에서
생이라는 악기를 연주하는 방법이다.

작가의 이전글 책 만들기의 기쁨과 슬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