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
어떤 날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고 싶다.
말을 꺼내는 것조차 벅찬 날이 있다.
누군가가 묻는다.
“무슨 일이 있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그냥,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설명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 있다.
정확히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입을 열면 뭔가 부서질 것 같은
그런 날.
그럴 때 나는
휴대폰의 알림도 무음으로 돌려두고, 창밖의 소음조차 귀에 거슬린다.
세상과 나 사이에 투명한 벽 하나를 세워두는 느낌.
소리도, 말도, 감정도 전달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리고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보호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입을 다물므로써.
나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말해야 안다’고 한다.
‘표현해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어떤 감정은 말로 꺼내는 순간 왜곡되고,
입에 올리는 순간 부질없어지는 것들이 있다.
가끔은 말하지 않는 것이 가장 진실한 표현이기도 하다.
말 없는 시간, 말 없는 감정.
그것도 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왜 이렇게 말이 없냐”는 말을 들을 때면괜히 죄책감이 밀려온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
하지만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많은 걸 느끼고 있다.
말하지 않아도 내 안에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 이야기들은 그저 지금은 밖으로 나올 준비가 안 된 것뿐이다.
말이 나올 타이밍도, 방향도 모두 스스로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나는 그걸 믿기로 했다.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에는 대신 조용히 듣는다.
나의 숨소리, 나의 움직임, 그리고 아주 낮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들.
말은 없지만 존재는 여전히 진동하고 있다.
그 작은 진동들을 침묵 속에서 들여다보는 일.
그것이 나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된다.
예전에는 그런 날들이 오면 스스로를 책망했다.
왜 이렇게 무기력하지?
왜 아무 말도 못 하지?
하지만 지금은 안다.
말이 없는 날도 필요하다.
그건 회피가 아니라, 정리를 위한 침묵이다.
말이 멈춘 시간, 그 속에서 마음은 자란다.
그래서 오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한다.
억지로 웃지도, 괜히 설명하지도 않는다.
말을 참는 것이 아니라,그저 말을 쉰다.
감정을 담을 언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에.
그리고 그 침묵마저 하나의 말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내 가장 깊은 고요를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