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1. 내가 나를 견디지 못할 때
문득, 나 자신이 너무 버거울 때가 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숨이 막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마음에 금이 간다.
그럴 때는 누가 내 옆에 있어도 소용이 없다.
이 고통은 타인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견딜 수가 없어.”
그 말은 너무 조용히, 너무 자주, 속에서 올라온다.
사람들은 말한다.
“네 편이 되어줘야 할 사람은 너 자신이야.”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해.”
하지만 나는 묻는다.
‘나는 지금 이 상태의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무기력하고, 예민하고, 누가 나를 조금만 건드려도 터져버릴 것 같은 이 상태를.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기에 더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런 날은 거울도 보기 싫다.
내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고, 숨소리조차 귀에 거슬린다.
내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니, 그게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럽다.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
“왜 이렇게밖에 못 살아?”
“왜 아직도 여기에 머물러 있어?”
“왜 하필 너는 너야?”
그 질문들엔 대답이 없다.
있다 하더라도, 아무것도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건 설명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니까.
나는 나를 떠날 수 없다.
내 마음이 불편해도, 내 감정이 지나쳐도,
나는 이 몸에 갇힌 채 살아야 한다.
그러니 그 고통은, 세상 어떤 외로움보다 깊다.
누구든 불편하면 거리를 둘 수 있지만, 나 자신은 거리를 둘 수 없다.
그래서 때로는 그 무력함이 견딜 수 없는 절망이 된다.
하지만, 이 고통에도 끝이 있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감정도 결국엔 잦아들고,
내가 나를 가장 싫어하던 날도 다음 날이면 조금은 괜찮아지곤 했다.
중요한 건 그 하루를 어떻게든 ‘넘기는’ 것이다.
그저 숨만 쉬어도 된다. 누워만 있어도 된다.
울어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게 ‘견딘다’는 것이다.
살아낸다는 건 크게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이토록 작고, 조용하고, 고요하게 버텨내는 것이다.
어느 날 밤,
내가 나를 가장 미워하던 순간에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지금 이 감정을 견디는 것도 결국은 너야.”
그 말에 울었다.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것도 나지만,
이 힘듦을 참고 있는 것도 나라는 사실.
그 순간, 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미안해. 너무 오래 외면했지.”
“지금 이 감정도 네 일부니까, 같이 살아보자.”
그 말을 스스로에게 건넨 이후 나는 조금 덜 미워졌다.
지금도 나는 가끔 나를 견디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시간이 지나갈 것이라는 걸.
가장 나를 싫어하는 순간에도
내 안엔
그 나를 붙잡고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다는 걸.
우리는 그렇게, 자신을 견디며 살아가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