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4. 내 안의 어린 나를 만났을 때
한밤중, 갑자기 잠이 깨는 날이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 것도 아닌데 무언가 내 마음 안에서 움직인다.
소리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그럴 때 나는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작고, 조금 더 겁 많고, 자주 눈치를 보던 아이.
어느 날, 그 아이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말없이 나를 바라보며 작은 손을 무릎 위에 얹고, 기다리는 표정이었다.
나는 그 아이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
그 아이가 나를 이끌어온 걸까, 아니면 내가 결국 돌아간 걸까.
그 순간 알았다.
내 안에는 여전히 그 아이가 살고 있다는 것을.
어디에서도 제대로 위로받지 못한 채, 설명도 듣지 못한 채,
그저 내 안 어딘가에 조용히 숨죽여 있던 아이.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많이 외로웠지?”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말보다 선명한 대답이었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려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어.”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자 가슴 깊은 데서 묵직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왔다.
우리는 종종 지나간 자신을 너무 쉽게 잊는다.
“이미 지난 일이니까.”
“이젠 어른이니까.”
그렇게 과거를 다독이기는커녕 덮어버리기 바쁘다.
하지만 과거는 지워지는 게 아니라 그대로 안에 남아 있다.
특히, 위로받지 못한 감정들은 성장이 멈춘 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문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불안할 때, 어디선가 어린 내가 떨고 있다.
내가 이유 없이 울컥할 때, 말하지 못했던 그 아이가 울고 있다.
나는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한참을 생각하다가 조용히 손을 잡아주었다.
“괜찮아. 지금 너는 나와 함께 있어. 더는 혼자가 아니야.”
그 말에 아이가 조금 미소를 지었다.
작고 미세한 변화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우리는 모두 내 안의 ‘어린 나’를 품고 살아간다.
어떤 이는 그 아이를 부끄러워하고, 어떤 이는 철저히 외면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그 아이는 버려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해받아야 할 존재라는 걸.
내가 그 아이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을 때, 나는 비로소 진짜 ‘나’를 품는 법을 배운다.
어쩌면 그동안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외부의 시선이 아니라 내가 내 과거를 외면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 아이를 숨기지 않기로 했다.
그 아이가 울면 함께 울어주고,
그 아이가 웃으면 함께 안아주기로 했다.
나를 온전히 안는다는 건 지금의 나뿐 아니라
과거의 나까지도 끌어안는 일이다.
오늘 밤, 나는 다시 그 아이와 마주 앉는다.
말을 많이 하진 않는다.
그저 곁에 앉아 있는 것으로도 충분한 밤이 있다.
내가 끝내 외면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그 아이는 조금씩 더 편안해진다.
내 안의 어린 나를 품을 수 있을 때, 나는 더 이상 나를 버리고 살아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