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김대리는 왜 회사에서만 까칠해질까

'좋은'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나쁜' 조직 - 조직이라는 프레임의 역설

by sssoyyy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마주친 김 대리는

유모차를 끄는 행인을 위해 기꺼이 문을 잡아주는 다정한 아빠고,

옆자리 이 팀장은 유기견 보호소에 정기 후원을 하는 따뜻한 이웃이다.


하나같이 떼어놓고 보면 참 좋은 사람들인데,

이상하게도 '조직'이라는 프레임 안에만 들어오면 우리는 모두 조금씩, 혹은 지독하게 이상해진다.


israel-andrade-YI_9SivVt_s-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Israel Andrade

1. '우리'라는 이름의 제로섬 게임


하루 8시간, 때로는 12시간.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붙어 지내는 동료들은

물리적으로는 가장 가깝지만, 심리적으로는 가장 치열한 이해관계의 최전선에 서 있다.


한 팀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역설적이게도 '네가 하지 않으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된다.


업무와 업무 사이, 그 모호한 경계선 위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벽을 세운다.


그 벽은 나태함의 소치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다.


내가 세운 벽이 낮아질수록 타인의 업무가 범람해 들어오고,

결국 감당할 수 없는 파고에 휩쓸리는 것을 경험하며 우리는 점차 영악해지는 법을 배운다.



2. 호의가 권리가 되는 비극의 메커니즘


동료를 배려해 선뜻 손을 내밀었던 과거의 기억은 대개 훈장보다는 상처로 남는다.


"저번에도 해주셨으니까 이번에도 좀 부탁드릴게요."

"그 일은 OO 씨가 손댔던 거니까 끝까지 책임지세요."


선한 의도로 시작한 일에 책임의 전가가 뒤따르고,

한 번의 호의가 당연한 의무로 고착되는 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깨닫는다.


조직 안에서 '좋은 사람'이 되려다가는 금세 '만만한 사람' 혹은 '영리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만다는 것을.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다정해질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며 조금씩 차가워진다.



3. 고과라는 이름의 '서열 매기기'


여기에 '인사고과'라는 잔인한 필터가 더해지면 동료애는 설 자리를 잃는다.

아무리 성과가 좋아도 누군가는 A를 받고 누군가는 C를 받아야 하는 상대평가의 굴레 속에서,

동료의 성취는 곧 나의 위협이 된다.


앞서거나 뒤처지는 발자국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경주로 위에서,

옆 사람에게 마냥 따뜻한 응원을 건네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서로를 지지하는 파트너가 아니라,

밟고 올라서야 하거나 밀려나지 않기 위해 견제해야 하는 '잠재적 경쟁자'로 재정의된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


결국 조직은 시스템의 효율을 위해 인간의 다정함을 비용으로 지불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다.


조직이라는 프레임이 걷히고 난 뒤, 우리에게 남는 것은

'인사고과 등급'이 아니라 그 차가운 전장에서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던 '사람의 기억'이라는 점이다.


오늘도 우리는 조직이라는 거대한 기계의 부품으로 살아가지만,

그 견고한 틈새 속에서도 아주 가끔은 '영리하지 못한 호의'를 베푸는 인간이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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