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나간 감정들> 3

피하는 마음과 부딪히는 마음 사이에서

by sssoyyy
anis-sabbagh-w3SG2LVmtLE-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Anis Sabbagh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20년을 배우고,

사회에서 15년 넘게 일했지만,

나는 여전히, 관계가 어렵다.


오래 지키고 싶은 관계 속에서

간혹 마음이 상하는 일이 생길 때면,

나는 또,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그냥 피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솔직하게 말해보는 게 맞을까.



직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이 사람, 저 사람-

감정과 관계들이 얽히고

불편함이 쌓여갈 무렵.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줄 거라 믿었던 동료에게

내가 겪고 있는 일들과 그 안에서 다친 마음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심으로 꺼내놓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말은, 내가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잘 이해가 안 돼.

솔직히 내 일만으로도 벅차."


그 말도 그 사람의 진심이었을 테다.


그런데 기대치 못한 반응은

내 안에서 무언가를 '툭'하고 꺾었다.


'이 사람에게 나는,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내가 생각한 '우리'의 관계와

그가 생각한 '우리'의 관계는

어쩌면 다르게 서 있었던 것 같다.


marissa-lewis-CcOJtY1UVV8-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Marissa Lewis

그날 이후, 애쓴 적 없이도 나는 달라졌다.
겉으로는 여전히 웃고, 대화하고, 함께 일했지만
그 관계에 마음을 다하던 나는 더는 없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나도 모르게 선을 그었다.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고

내 안에 약간의 여유가 생긴 어느 날


나는 그날 그 친구의 말이

어쩌면 그 역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다는 걸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그때의 나는 너무 벅찼고,

그에게는 감당할 여유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 여전히 고민은 남는다.


내가 누군가에게 느끼는

서운함, 불편함, 상처 같은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과연 항상 옳은 일일까?


늘 진심을 꺼내야만

좋은 관계가 되는 걸까.

불편하더라도 부딪히는 것이

언제나 정답일까.


어쩌면,

어떤 감정은


한참 아프고 곪았을 때보다

조금씩 아물고 나서야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덜 날카롭고,

상대도 덜 지쳐 있을 때-
그제야 말이 되는 이야기들이 있는 건 아닐까.


agustin-fernandez-XWbWjR5gN98-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Agustin Fernandez

아직 정답은 모른다.

다만,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관계라는 건 결국
‘무조건적인 솔직함’이나

‘일방적인 인내’

그 어느 한쪽으로는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


그 사이 어딘가에서
서로의 온도를 알아가고,

타이밍을 기다리고,


말보다 긴 호흡으로

이어가는 것.


그것이

더 오래 남는 관계를

만드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피하는 마음과 부딪히는 마음 사이,

그 어딘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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