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연민, 그리고 죄책감
아주 어렸던 시절,
나는 엄마가 그저 ‘내 엄마’이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자주 소원했다.
식구 많은 친정집의 맏딸,
오래 아프셨던 할머니의 며느리,
경제적 책임감이 없던 아버지를 대신한 가장의 자리까지.
늘 지쳐 보였던 엄마에게 ‘내 엄마’라는 자리는
어쩐지 너무 작아 보였다.
그래서 언젠가,
엄마의 유일한 전부가 되는 날이 오기를
어린 나는 손꼽아 기다렸다.
엄마의 손길이,
엄마의 눈길이
그렇게 간절했던 그 시절은
생각보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내 삶을 살아보며 문득 깨달았다.
엄마는 단 한 번도
자신으로 살아본 적이 없었겠구나.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혼란스럽기만 했던 어느 20대의 밤.
나는 생각했다.
엄마는 그런 질문조차 스스로에게 해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책임감만으로 삶을 버텨온 부모를 지켜보는 건
때로 참 벅찬 일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다르게 살고 싶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찾아가고,
나를 먼저 돌보는 삶.
나 자신을 사랑해야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낄 수 있다고 믿었기에.
하지만,
그렇게 나를 지키려 애쓰는 삶은
부모님의 삶과 마주할 때마다
낯선 죄책감을 안겼다.
늘 참고, 늘 미루던 그들의 방식 앞에서
내가 누리는 사소한 행복조차
왠지 부끄럽고, 미안했다.
마치
그분들의 인생을 비난하는 자식이 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자꾸,
마음은 애틋한데 말은 짧아지고
얼굴은 자주 마주하지만
진심은 좀처럼 건네지지 않는다.
약해지고 작아지는 부모님의 뒷모습에서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고 있다는 걸
요즘 자주 실감한다.
고맙고 미안하다는 표현도,
그 어떤 누구보다
여전히 어색하고 어렵기만 하다.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에
마음은 자꾸만 바쁘고 조급해진다.
그런데도
마음을 전하고 싶다는 욕심보다
또 상처 줄까 봐,
그게 더 무섭다.
그래서
말 대신 웃고,
표현 대신 거리를 두고,
진짜를 숨긴 채
어른인 척, 괜찮은 척,
자꾸만 조심하게 된다.
사랑과 연민,
죄책감과 조바심이 얽혀 있는 이 마음이
요즘 참 혼란스럽다.
부모 앞에서 자식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끝내 다 성장하지 못한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있는그대로의당신들을사랑하고
#그저행복하기를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