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착길 Oct 25. 2021

흐릿할 때가 더 예뻐


"엄마, 차 불빛은 흐릿할 때가 더 예뻐."


주말 나들이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이 대뜸 얘기한다. 올해부터 안경을 쓰게 된 아들은 안경을 쓰고 선명하게 볼 때와 안경을 벗고 흐릿하게 볼 때를 구분하며 자신이 원하는 명도를 조절한다.


나도 그랬다. 언제가 눈부신 가로등을 핸드폰으로 찍었는데 사방으로 번지는 빛줄기들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그때의 핸드폰은 선명도가 많이 떨어져서 가로등 불빛을 번지게 했다. 어두운  골목길에 우두커니 선 가로등이 크고 둥그런 빛으로 찍혔다. 사진을 보고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다, 흐릿함이 때론 진실을 보여줄 때가 있다.


뿌연 안갯속에 있는 듯 흐릿한 마음일 때였나 보다. 그땐 한 발 한 발 내딛는 그 순간만 선명했기에 먼 곳의 것들이 막연히 아름다웠다. 삶의 곳곳에 아름다운 것들이 숨어있을 거라고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 같다. 아름다운 것들이 진실해 보였던 때였다. 아이처럼.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 불빛, 마음을 밝혀주는 작은 촛불, 밤하늘을 수놓는 별과 달, 늘 새롭고 아름다운 노을, 아침이슬처럼 맑고 투명한 아이의  볼 때만큼은 진실해졌다.


가로등 불빛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아름다웠구나. 흐릿한 사진이 아니었다면 몰랐겠구나. 차를 사랑하는 아이의 눈에 차 불빛이 아름답게 보이는 게 진실일 것이다. 때론 흐릿함이 진실을 보여줬던 그때처럼. 자연스레 흘러나온 아이의 말이 선명하게, 박힌다.


몸과 마음이 흐릿한 요즘, 숨어있는 아름다움과 진실을 찾아 나서볼까.




작가의 이전글 꽃 진 자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