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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길 Oct 27. 2021

바람 잘 날 없는 나무 아래

근사한 기분



숲에 가을이 왔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한 그루 나무는

오늘도 몸살입니다.



햇살 좋은 낮에도 나무 아래

머물러야 하는 다람쥐 남매는

간질거리는 몸을 푸느라 우당탕거립니다.



다롱이네 학교에 무서운 러스가 나타났거든요.

가끔씩 학교에 가서 친구들도 만났는데

러스 때문에 당분간 나무 밑에서 못 나온대.



다람이네 유치원은 이번 주에

아주 오랜만에 숲 체험을 가기로 했어요.

다람이는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꼭꼭 약속했답니다.

2년 전에 갔던 그 숲을 추억하면서요.

이번엔 단풍잎을 주워와서

사슴벌레에게 그늘을 만들어 줄 거라며 

들떠서 신이 났습니다.



다롱이와 다람이는 함께 살기에

함께 못 나가게 되었습니다.

러스가 스쳐간 친구와 가까이만 있어도

꼼짝 말아야 하거든요.

다롱이는 학교의 즐거움과

수고로움을 알기에 받아들입니다.

동생 다람이는  번이나 엉엉 울며

유치원에 가야 한다고 슬퍼합니다.

나무 기둥을 붙들고 울기에

나무속까지 울립니다.



눈부시고 따사로운 햇살이 드리운 가을

한 그루 나무 아래는 때 이른 겨울 풍경입니다.

나뭇잎이 수북이 쌓여 덮어주면

나무따스해질까요.

눈이 소복이 쌓이겠지요.



밖에서 불어온 바람에 나무는 흔들립니다.

안에서는 다람쥐들이 바람을 일으킵니다.

바람 잘 날 없는 나날입니다.

살아있기에 맞는 바람, 몸을 살리는 바람 덕분에

나무는  몸살입니다.








백신 2차까지 맞고 몸을 추스르려는 차

큰아이 학교에 확진자가 발생하여

큰아이와 작은아이 모두 집에 있게 되었어요.

지난겨울 나목이 되었던 때와 근사한 기분이에요.

어질어질 몽롱한 정신과 흐릿한 시야에

아이들이 다람쥐들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화창한 가을 폴짝폴짝 뛰어다닐 다람쥐들이

집안에서 몸부림치는 걸 한 동안 보아야 하네요.


평소보다 몸과 마음이 분주하게 되었는데

더 읽고 싶고 더 쓰고 싶어 져요. 이상하게요.

틈나는 대로 음악을 찾아 듣고 싶어 지고요.

한 동안 꺼내지 않았던 기타를 꺼내서

막 소리 지르고 싶어지기도 해요.

고통이나 슬픔이 글과 음악을 찾게 하나 봐요.

아주 예전부터 그랬고 늘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변치 않는 저만의 도피처임이 틀림없어요.

다시금 이곳 브런치가 고맙기만 합니다.

싱싱 생생한 글이 언제나 기다리는 곳,

갑자기 궁지에 몰렸는데 새로운 문이 보이네요.

헛것이 보이는 건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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