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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길 Nov 28. 2020

지금 필요한 건

상상의 힘


앤..

애앤..

앤느..

어떻게 불러야 할까 너의 이름을...

널 처음 만난 때가 언제인지도 까마득해.

어릴 적에 너는 작은 브라운관 안에서 씩씩하게도 재잘거리며 야무지게 할 일을 하고는 따뜻하게 마음을 나누는, 내가 보기엔 예쁘기만 한 소녀였어. 얼굴이 하얗고 예쁜 옷을 입은 다이애나보다 깔끔한 회색 치마 주근깨 빼빼 마른 너의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단다. 숲에 가서 따온 들꽃으로 만든 모자는 세상 하나뿐이었잖니.


빨간 머리카락 때문에 넌 힘들어했는데 내가 보기엔 갈색이나 빨간색이나 금색이나 다 개성이 있다고 느껴졌어. 그때 너의 주변 사람들이 상처를 주지 않았다면 너도 그 머리를 자연스럽게 느꼈을 텐데... 어디에나 아무 생각 없이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근데 너의 나이 땐 외모도 남들의 시선도 강하게 마음을 때리지. 사실 나도 서른이 다 되어서야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는걸.


아무튼, 그렇게 첫 만남에 너는 내 마음을 사로잡았어. 퉁명스러웠던 마릴라 아줌마의 마음을 녹이고 소극적인 매튜 아저씨를 움직이게 했던 네가 너무 대단해 보였든. 내가 수다스러운 걸 안 좋아하는데 너의 이야기 목소리, 표정과 몸짓은 한없이 보고 들어도 질리지 않고 기분이 좋아졌단다. 들을수록 힘이 난다고 할까.


그땐 너의 성장 배경까지는 잘 모르다가 최근에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고 알게 되었어. 어쩐지... 너의 이야기 속에는 세상 모든 것이 들어있어서 하나도 흘려들을 게 없었나 봐. 어린 나이에 세상을 너무 많이 알아버린 너. 고통스러운 현실에 필요했던 상상력. 그 상상의 힘 에서 얻을 수밖에 없어려운 환경이라 마저 쉽지 않았지. 그래도 너는 어떻게든 책을 구해서 읽고 상상하며 그 순간을 견디었구나. 다시 만난 너를 안고 같이 엉엉 울고 싶더라. 반갑기도 하고 처음에 몰라준 게 미안하기도 해서.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 너무 좋았어. 너와 재회로 지새운 밤들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이번엔 나의 남편과 함께 너를 만나서 더 좋더라. 너는 길버트와 사랑을 이루었잖아. 난 매튜 아저씨 같은 남자를 만났어.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웃어주고 지지해주는... 오~~ 하며 시낭송을 하던 너를 곧잘 따라 하면 남편은 그저 허허하고 웃어.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든 생각으론 마릴라 아줌마와 매튜 아저씨만큼 너를 아끼고 사랑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는 야. 드라마적인 각색이 있었지만 내겐 그 사랑이  한 감동을 주더라. 가족의 사랑만큼 크고 아름다운 게 어디 있겠. 


두 번의 만남이 너 진정 만난 것인지 잘 모르겠어. 그래서 너를 세상에 보여주고 소개해준 작가의 책으로 다시 만나려고 해. 사실 이것도 너의 말을 그대로 다 들려주진 못할 거지만 훌륭한 번역가들도 많으니 엄선한 책으로 너를 다시 만나러 갈게. 하얀 꽃이 만발한 사과나무 터널을 책 속에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P.S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데 오랫동안 써오던 이름너를 느끼게 되는 '앤느'를 붙여보았어. 지금 나에겐 상상의 힘이 필요한데 왠지 너의 이름이 도와줄 것만 같거든. 너에게는 말해두고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해해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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