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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길 Nov 30. 2020

순수와 절제의 시간

소나기 마을


소낙눈이 내리나요?




큰 아이 유치원에서 아빠와 함께 떠나는 여행 프로그램으로 다녀왔던 소나기 마을. 여름이었다.

그때 아빠는 아이와 소나기를 맞았다며 갑자기 솟아올라 쏟아지는 물줄기를 피하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 영상을 보내왔었다. 와 어디지? 임실치즈마을에 피자 만들기 체험을 하러 간 줄 알았건만 소나기를 맞다니!


큰 아이 여섯 살 적이라 난 세 살 배기 둘째와 집에 있었다. 뭐 하고 있었더라. 아빠와 떠나는 첫 당일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온 아이는 어떻게 잠들었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빠의 상기되고 흥분한 표정만 기억난다. 피자 만들기 할 때 친구보다 많이 하려는 아들을 지켜보다가 진땀 났다는 이야기를 잠시 하더니 '황순원문학촌' 내책자를 슬쩍 내밀었다. 작은 안내책자가 예쁘게도 만들어져서 얼른 펼쳐보았다. 이런 문학관은 처음인데? 하며 소나기마을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그리 일주일인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그곳에 온 가족이 출동했다.


소설 <소나기>로 유명한 황순원 선생님의 일대기와 작품들을 자연스럽게 감상할 수 있고 원두막에 앉아 더위도 피하면서 한 시간마다 한 번씩 소나기도 내리는 문학촌이 양평의 작은 산 중턱에 자리해 있었다. 보통 작가의 문학관은 생가가 있는 곳에 짓는데 황순원 선생님은 고향이 북한 땅에 있어 소나기 마을에 등장하는 양평읍을 모티브로 이곳에 만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문학관 아랫마을 어귀에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선생님 유년의 고향을 빼닮아서 각별히 아끼셨다고. 


그리고 3년 후 울, 냇물은 더 맑아 보이고 힘차게 흐른다. 한 번 와봤던 곳이라고 고향집에 온 듯 편안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도 편안하고 즐거워 보인다. 입구에서 방역 절차를 무난히 통과하고 작가의 연대기를 볼 수 있는 전시실로 향다. 작가라고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하는 이유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후학을 양성하는 데에 평생을 보내셔서 그렇다고 한다. 작가들의 선생님. 선생님은 글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사셨다고 한다. 쉽지 않은 삶이었을 것이다. 글과 삶이 일치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 때문이다. 3년 전에는 유아 둘을 데리고 선생님 이야기를 흘려 보고 왔다보다. 이제야 보이니 말이다.


작품 전시실 입구에는 선생님의 시들과 작품세계를 간략하게 소개하는 벽이 나오는데 '순수와 절제의 미학'을 추구했던 선생님의 정신처럼 깔끔하고 담백하게 꾸며놓았다. 작가 정신이라... 우리말을 마음껏 쓰지 못하던 시절에 우리말을 가꾸고 문학으로 삶을 이야기하셨던 그 정신이 느껴진다. 아이들이 이젠 소년 소녀에 가깝게 커주어서 가능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선생님의 시들이 몇 편 걸려있어서 발길이 거기서 멈다. <소나기>나 <학>, <독 짓는 늙으니> 등 소설을 지으신 분인 줄만 알았는데 시도 소설과 버금가게 많이 쓰셨다니.. 아이들은 아기자기한 조형물에 관심을 보일 때 난 그 시들을 사진에 담느라 바다.



작품 전시실을 돌아 나오면 영상 관람실이 기다린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깜깜하다. 암순응 후에 벽에 보이는 시작 스위치를 누른다. 3년 전에 본 것 같은데 어제 일처럼 누르며 스스로 놀다. 버튼에 손을 떼자 책걸상 맨 앞, 칠판 위치의 스크린에서 애니메이션이 시작된다. 아이들은 작은 나무 의자에 앉아 열심히 감상한다.



소년과 소녀..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던 소설의 마지막 부분과 오버랩되며 시작한다. 소나기 그 이후의 이야기구나! 아이들은 창작 동화 보듯이 흥미를 보이고 어른이 된 우리는 저건 뭐지? 하며 이해해보려 한다. 소녀의 영혼이 나타나 소년에게 업히는 장면... 갑자기 떠난 소녀를 그리워했던 소년은 그 개울가 징검다리 앞에서 그제야 미소 지으며 소녀를 보내준다. 인사 없이 떠난 소녀가 마지막 인사하러 왔나 보다. 영상은 소녀에게 인사하던 소년이 어른이 되면서 마무리된다. 저 소년은 황순원 선생님이었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보며 영상실을 나선다.


사랑방이 친절하게 기다리고 있다. 달력 만들기 행사가 있다던 안내가 있었기에 바로 자리에 앉는다. 나이 지긋하신 작가님 같은 분이 소나기 이야기로 구성된 달력 만드는 과정을 따뜻하게 설명해 주신다. 우린 재료를 하나씩 받아 들고 열심히 만들어 완성한다. 뜻밖의 선물까지 받게 되고...



실내 활동을 많이 했으니 잔디밭과 원두막 그리고 움집들이 기다리는 밖으로 나간다. 문학관을 나가기 전에 소원 나무에 각자의 소원도 적어 달아 놓는다.



수숫단 움집을 형상화한 신비로운 조형물 사진을 한 컷 찍고 이제 밖으로 나간다. 나가는 순간까지 철저한 방역을 하고서. 로나 때문인지 겨울이어서인지 인적이 드문 문학관을 조용히 나온다.


황순원 선생님 부부의 묘역에 참배를 드리고 주변을 산책하면 좋다는 안내하는 분의 말씀에 우리는 참배 하고 산책로를 오른다. 살짝 묵념을 하는 엄마 아빠를 본 뒤 아들은 조상님께 성묘하는 후손처럼 혼자서 깍듯이 절을 한다. 세 번 씩이나. 본의 아니게 묘역 앞에서 박장대소하여 버렸다. 부디 이해해 주시기를...




문학관을 둘러싼 작은 산을 산책한 뒤 내려온 마당엔 소설 속의 징검다리 개울 같은 작은 연못, 원두막과 움집들이 보인다. 이번 가을에 다시 만들어 놓은 듯한 수숫단 움집이 탄탄하게 묶여 있다. 동심이 덜한 나는 그저 사진만 찍는다. 놀이터에 온 듯 징검다리를 건너고 원두막을 오르내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소설 속 주인공들도 저리 놀았을까 상상해 본다.


  

겨울이 시작된 듯 땅이 얼기 시작하고 손끝이 시려온다. 날은 차지만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이 동네가 참 예쁘고 따스했다. 문학의 힘 이리라. 소설의 배경이 현실재현되다니. 길이길이 사람들을 일깨우고 감동을 주며 아가게 하다니. 잊어버렸던 문학의 힘을, 작가의 정신을 배고 돌아왔다.




매표소에서 남편이 소낙눈이 내리는 거냐고 농담을 건네니 네? 하며 미소 지어주신 분과 문학관 입구에서 안내해주신 분, 달력 만들기 도와주신 분, 예쁜 배경으로 가족사진을 찍어주신 분께도 감사드린다. 따스함이 가득한 공간에서 나오니 겨울도 이겨내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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