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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길 Nov 24. 2020

'수선화에게' 배운

외로움을 견디는 법



수선화에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




요즘 브런치 작가님들 글이 많이 아프고 슬프고 외로워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마음도 얼어 버렸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란 걸 알기에 몇 번이고 댓글 창에만 머물러 있었다. 한 마디 위로라도 해 드리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스르르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가 마음속에서 떠올랐다.


살아온 동안 가장 아프고 슬프고 외로웠던 그때 내게 와 준 시. 대학교 2학년 봄, 실록이 푸르르고 친구들은 성년이 된 것을 축하하던 5월에, 삶의 지붕이 날아가고 땅이 꺼진 곳에 홀로 덩그러니 남은 것 같았던 나를 위로해 준 시. 세상의 끝이 여기가 아닌가 하며 방황하던 그때 학교 도서관 4층으로만 발길이 향했다. 친구들은 열람실에서 공부에 매진할 때 내 몸은 도서실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도서실 책장 사이를 배회하면서 발견한 시가 바로 <수선화에게>다.


고등학교 때 국어 숙제로 일주일에 시 몇 편씩 노트에 필사하며 유명 시들을 접하긴 했지만 마음에 닿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대학 입시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고통스러울 때 내 눈물을 닦아 준 게 바로 시였다. 류시화 시인의 잠언시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이 스윽 마음에 들어와 살살 달래주었다. 아직 시를 모를 때였다. 어렴풋이 깊은 슬픔을 달래 주는 것이란 정도 밖에는.


곁에 친구들이 있어도 한 없이 외롭기만 했던 5월이 내겐 겨울이다. 아빠를 잃은 딸의 봄이라서.

그해 봄에 내게로 오기 시작한 시는 삶의 고비고비마다 함께 해 주고 있다. 감사하게도.

지극히 개인적인 순간이지만 큰 위로를 받았던 시를 그분들께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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