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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길 Nov 11. 2020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시 읽는 날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함민복




어젯밤, 식탁 위에 함민복 시인의 시집 [말랑말랑한 힘]이 놓여 있었다.

퇴근 한 남편이 놓아둔 모양이다. 갑자기 왜? 하는 마음이 들다가 한동안 잊어버렸던 시인의 시집을 펼쳐본다.

[말랑말랑한 힘] 전에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는 시집 제목에 이끌려 시인을 알게 되었다. 경계가 뚜렷한 우리 사이를 꽃으로 연결해 준 시. 너무도 다른 두 사람이 만들어 갈 삶이 꽃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고 희망할 수 있었던 시. 잠시 잊은 듯한데 벌써 10년이 넘었다. 함민복 시인의 시는 매우 진솔하고 따뜻해서 젊은 날의 가난과 배고픔 마저 아름답게 느껴지게 해 주었다. 사진이나 방송으로만 만났지만 시와 사람이 일치하는 느낌을 주는 분이었다. 투명하고 순수했던 남편의 모습과도 살짝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에게 함민복 시인의 시집을 선물했을 것이다. 그 뒤로 남편은 내게 함민복 시인의 산문집 [길은 다 일가친척이다]를 선물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린 소박하지만 따뜻하게 관계를 이어가려고 했다.


요즘 내가 브런치에서 조금씩 쓰기 시작하니 남편도 조금씩 읽고 싶어 진 걸까. 반가운 제스처다. 서로의 일로 바빠서 이야기할 틈이 없지만 나를 생각해 주는 것 같아 고맙다. 인사이동으로 가장 바쁜 때에 브런치와 아이들에게 빠져 신경 써 주지 못한 게 미안해진다. 둘째 아이 잠자리 책을 읽어주면서 책장에서 빼놓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도 옆에 둔다. 눈과 입은 아이 책에 있고 마음은 나의 책에 있다. 첫 시 < 선천성 그리움 >을 다시 읽는다. 제목만 들어도 수많은 시름이 가셨던 시. 그냥 위로받았다. 젊은 날 무엇인지 모르게 어떤 것이 그리웠던 때에 내게로 와서 답을 주고 그리움을 정의해 준 시.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라니!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 떼와 내리치는 번개까지는 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막연했던 그리움이 이해되었다. 그리고 사람 그리워 품에 안았더니 서로의 심장이 반대쪽에서 뛰어 끝내 포갤 수 없다는 시인께 한 말씀드리고 싶기도 했다. 그럼 그리운 사람을 뒤에서 안아 보는 게 어떨까요?라고. 남편 덕분에 다시 시집을 펼칠 수 있는 가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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