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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착길 Dec 30. 2020

상실에 대한 우리만의

작은 어항 이야기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는 말을 주고받을 때였다. 그때쯤 유튜브에서 보았던 물고기들이 생각났는지 작은 아이가 대뜸 어항에 물고기를 키우고 싶다고 한다.


이 말을 하기 전부터 아이들은 햄스터를 키우자, 다람쥐를 키우자, 강아지를 키우자, 고양이를 키우자며 틈만 나면 꿈틀대는 동물들을 집 안에 들이고 싶어 했다. 그럴 때마다 이런 대답을 해주었다.

"엄마는 너희들이 강아지 같아서 다른 동물들은 없어도 돼."

"동물들은 자연에서 살아야 행복할 거야. 아파트 안에서 얼마나 답답하겠니?"

그러면 아이들은 그렇겠네 하는 눈빛으로 집에서는 못 키우는가 보다 하고 단념하는 듯했다.

진짜 이유는 아이 둘만 키우기도 버겁고 힘들고 지쳐서 다른 존재를 더 들여서 사랑해줄 깜냥이 안 된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었다. 겨우 나무 두 그루 작은 화분 몇 개를 관리하는 수준으로 애완 생물을 더 늘 수 없었다.


그렇게 다른 존재를 들이지 않으려던 굳은 마음 스르르 녹버린 건 작은 아이의 물고기를 향한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동영상을 보는 시간에도 귀엽고 깜찍한 것들만 보고 선물을 골라도 토끼나 다람쥐 같은 사랑스러운 인형만 모으는 모습이 보기에도 좋았기에. 그렇게 인형들과 교감을 하던 아이는 어느 날,

"엄마, 유치원에도 못 가고 친구들이랑 놀지도 못하는데 물고기라도 키우고 싶어요."라고 또박또박 예쁘게도 말한다. 막 칭얼대며 떼쓰는 소리였다면 그냥 흘려 넘겼을 텐데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손을 모으며 얘기하니 철통같이 닫힌 마음의 문이 스르르 열리고 만 것이다. 더구나 집안에서 오빠의 공격성을 다 받아주며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아이가 측은히 여겨지기도 했고.


그래서 집에 커다란 어항이 있는 동생에게 얘기를 했다. 제부가 어항을 만들어 꾸미고 무심히 물고기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 어항 애호가라서 우리 집의 변화를 반기며 작은 아이에게 어항을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어항 꾸미는 과정을 간간히 들었던 터라 어항을 들이는 게 막막했는데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아 그때는 그저 아이랑 같이 마냥 신났다.


크리스마스날, 산타 이모부가 예쁘게 꾸민 작은 어항을 들고 와서 구피 네 마리를 넣어주셨다. 어항과 물고기를 좋아하는 마음이 통해서 기분 좋게 놓고 가셨다. 우리 네 식구를 생각하며 네 마리를 데려온 센스쟁이 이모부다. 자연스레 엄마 물고기, 아빠 물고기, 오빠 물고기, 동생 물고기가 되었다. 작은 물고기들이 잘 죽는 걸 알기에 그냥 물고기만의 이름을 지어주자며 생긴 대로 통통이, 튼튼이, 멋쟁이, 귀요미 이렇게 이름을 바꾸도록 유도했다. 그날 밤 우리는 새 식구를 들이고 기포 소리를 자장가 삼아 단잠에 빠졌다.


어항 전문가인 이모부에게 아빠가 잘 배워서 물이며 공기며 먹이에 대한 것을 알아 뒀다. 늘 그렇지만,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느라 정신줄 놓았던 엄마는 아빠가 잘 배웠으려니 하고 있었다. 구피의 모습만 알지 구피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났고 아이와 함께 신나게 먹이도 구해놨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 통통이가 사라졌다. 어딘가에 숨어 있겠지 하고 아빠와 아이들이 눈을 부릅뜨고 찾았는데 그만 어항 밖 바닥의 반짝이 스티커 위에 누워있다고 한다. 설마! 저녁을 준비하다가 부리나케 뛰어갔다. 물속 어딘가 있을 줄만 알았다고 빨리 찾지 못했다고 아빠는 마음 아파한다. 통통이의 부재를 확인하고 찾을 때까지 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다시 물속에 넣었을 때까지만 해도 아가미가 움직였는데 눈동자는 흐릿해져 있었다. 배가 볼록한 암컷이라 알이 가득한가 보다 했던 통통이... 아이들이 못 본 사이 아빠가 용왕님께 보내주었다. 그 뒤로 아빠는 구피에 대해 폭풍 검색을 했고 물 온도가 안 맞아서 그런 것 같다며 난방 온도도 올리고 어항 위에 백열등을 켜놓고 수온을 올리려 안간힘을 썼다. 그렇게 간 물고기가 안타깝기도 하면서 통통이가 죽었다며 대성통곡을 하는 딸아이를 더 이상 슬프게 하고 싶지 않은 딸바보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수온을 맞추려고 더 따뜻한 거실의 적당한 자리로 이사를 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 출발을 다짐하며 더 자주 볼 수 있는 곳에 두니 안심이 되었다. 통통이를 잃고 나서, 어항은 나의 마음 한편에 크게 자리 잡았다. 이제는 더 이상 죽어 나가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일어나면 물고기들이 잘 있는지 작은 어항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틈만 나면 동생에게 톡 해서 물어보니 구피는 키우기 쉬운 거라 하고 물고기는 그렇게 잘 죽는 거라 하며 우리 식구들의 호들갑에 낯설어했다. 수년 동안 어항을 관리하면서 작은 물고기들의 죽음을 셀 수 없이 보고 처리했던 동생으로선 한 마리에 연연하는 우리들이 적응 안 되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통통이는 우리 집에 온 날부터 가족이 되어 버렸는 걸.


또 다음 날 잠시 외출하고 왔는데 이젠 튼튼이가 수면 가까이 올라와 있다. 상태가 안 좋은 것 같다. 몇 분 후 튼튼이도 우리 곁을 떠났다. 작은 아이가 울면서

"엄마, 우리 남은 두 마리 다 죽으면 이제 물고기 키우지 말자." 그런다. 같이 울컥했다.

이제 더는 아픈 이별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 나 역시 그런 마음 때문에 물고기든 다른 애완동물이든 키우고 싶지 않았단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근데 아이에게 차마 그런 얘기까지는 해주고 싶지 않았다. 이젠 아이가 내 마음과 같아졌지만. 내 살 같은 딸.




엄마 어릴 적 시골 마루 밑에 거뭉이가 살았어.

똥개인지 진돗개인지 모르지만 까맣고 잘생겼단다.

일곱 식구 방에서 밥을 먹으면 마루 위에 두 발을 걸치고

우리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가만히 지켜보았어.

몇 년인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것 같아.

거뭉이의 똘한 눈동자가 생각 나.

몸집이 작지 않았는데 무섭지도 않았어.

거뭉이랑 뛰어놀았거나 쓰다듬어 준 기억은 없지만

거뭉이가 우리 집을 떠나던 날은 선명해.

아빠(외할아버지)가 대문 밖으로 끌고 가는데 대문에 발을 걸고

나가지 않으려 했던 거뭉이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

난 방 안에서 하염없이 울었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게

너무도 슬프고 아프고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 같아.

엄마가 기억하는 첫 번째 상실이란다.

정을 준 존재와의 헤어짐이 내겐 큰 아픔이란다.

그래서일 거야.

너희들이 키우자고 해도 모른 척했던 게.




오늘 우리 집 작은 어항엔 멋쟁이 한 마리만 남았다. 작은 아이는 아침도 안 먹을 정도로 상심했다. 어르고 달래서 울음은 멈췄는데 이젠 정말 다 죽으면 안 키울 거란다. 금붕어는 오래 산다 하니 금붕어 한 마리만 키울 거란다. 상심이 큰 아이에게 그림을 그려보자고 제안했다. 우리 곁을 떠나 보이지 않지만 네가 그림을 그려주면 우리 마음속에서 살 수 있다고. 아이가 평소에도 마음을 달래려 그림을 종종 그리기에 혹시나 하고 말해 보았다. 그러면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의 마음이 어렴풋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이는 펜을 들고 어항 속에 물고기 네 마리를 그리고 있다. 한 마리 두 마리 그리면서 마음이 가벼워지는지 얼굴이 밝아진다. 하루 이틀 만에 떠나버렸지만 아이는 물고기의 크기나 모습이 기억이 난다며 신나게 그린다. 다 그고 나서 아이는 본래의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라져 버린 존재들을 그림 속에 다시 살리며 힘을 내는 작은 아이가 참 귀엽고 멋지다. 나는 어릴 때 그림 그리는 게 힘들었는데 아이는 펜을 잡으면 힘이 난다. 어린 시절 나의 첫 상실의 아픔도 그림으로 치유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있는 그대로 울고 웃고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에게서 오늘도 배운다.


우리 마음의 어항 속 물고기 네 마리



올 한 해를 어떻게 마무리할까 하다가 남은 시간은 읽다만 책들을 다 읽어보자 했는데요. 어제오늘 틈틈이 책을 보는데 요 며칠 아이와 함께 작은 물고기들과 헤어지게 되면서 집중이 되질 않네요. 아이와 함께 기대하고 반가워하고 슬퍼했던, 그러다가 다시 힘을 냈던 이야기를 하나 남겨두고 해를 보내고 싶어 졌습니다.


조용히 그리고 조심스레 작은 글을 놓아두다가 어떻게 찾아오셨는지 읽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작가님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잘 건넜습니다. 글과 말 그 속의 진심이 힘을 주는 것 같아요. 새해엔 정성을 더한 글을 쓰도록 노력할게요. 오늘부터 강추위가 시작됐어요. 몸과 마음이 따뜻한 연말 보내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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