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아침부터 아들의 성화(생일 선물을 미리 받고자 하는 안달복달)에 지친 얼굴로 허겁지겁 고픈 배를 채운 뒤 멍하니 앉아 있는 남편에게 대뜸 의견을 물은 게 내 실수였던가. 브런치북에 넣고 뺄 글에 대해 갑자기 질문을 던지니 남편의 눈빛은 흐려지고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다. 어차피 혼자서 결정할 거면서 기운 없고 여유 없는 사람 붙잡고 난 뭘 한 거지.
넣는 것보다는 빼는 쪽을 선택하고 발간하기 버튼을 누른 뒤에도 남편에 대한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세상 자상하면서도 무엇이든 말하면 들어주던 사람이 꼭 이럴 땐 다른 사람 같이 느껴진다. 나한테 중요한 일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안드로메다로 출장 간 듯하다.
브런치북 발간 직전에 내 얘기를 안 들어줬다는 괘씸죄로 하루 정도는 냉랭함을 유지하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시선을 피하고 곁을 돌아서 다녔다. 그러다가 거실에서 영화를 같이 보게 됐는데...
나도 모르게 이렇다 저렇다 그런 것 같지 않냐 하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게 아닌가. 난 아직 마음이 안 풀렸는데 입만 풀려서는 앞부분 스토리를 알려주고 내 생각까지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도 어이없어서 웃음이 났다.
아직 마음은 차갑고 풀리지 않았는데 그의 입에 맞게 점심과 저녁을 차리는 나. 또 그걸 맛있고 고맙게 먹는 그. 누가 마음이 상했고 누가 상하게 했는지 아무도 모르게 1박 2일이 지났다. 남편과 마음을 나누는 타이밍과 언어들을 내가 잊어버렸나. 요즘 글로 소통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곁에 있는 이와 말로 소통하는 법을 잊은 채 내 마음만 들어 달라고 투정한 꼴이 되었다.
썰렁함이 가득한 거실, 넷플릭스에서 볼거리를 찾다가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라는 영화를 보게 된 걸 감사해야 할까 보다. 올해 나의 목표이자 관심사가 드라이빙이고 모건 프리먼이 주인공이라서 보기 시작했는데 참 잘 보았다 싶다. 좋은 영화를 매개로 쓸 데 없이 토라진 마음을 풀 수 있었으니까.
영화는 노년의 데이지 여사(제시카 탠디)가 외출하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다 사고를 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노년의 운전은 무리겠구나. 나는 빨리 운전을 해놔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토리를 따라간다. 아들은 직물회사 사장이고 효자인 듯하다. 어머니가 부를 때마다 바로 달려와서 일을 처리한다. 아들은 회사 직원의 소개로 호크(모건 프리먼)를 만난다. 믿음직한 그를 어머니의 운전기사로 고용한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센 데이지 여사는 운전기사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스스로 운전할 수 없는 걸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듯. 하지만 인내심이 강하고 유머가 가득하고 인간미가 넘치는 호크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둘은 천천히 가까워지면서 믿고 의지하는 사이가 된다. 호크는 끝까지 그녀에게 정성을 다한다. 그녀도 그의 따뜻한 마음을 잘 알고 있다. 15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할 정도로. (아! 데이지 여사는 젊은 날 학교 선생님이었고 까막눈 호크가 글을 깨우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외화나 외국 서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노소 성별을 가리지 않는 우정. 동성의 또래나 학교 동창만 친구가 되고 우정을 나누는 나라에 살고 있어선지 어릴 적부터 신기했고 부러웠다. 영화 속 노년의 두 남녀도 참다운 우정을 나누었으리라.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저마다의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마음을 나눌 친구가 아니겠는가. 그 친구가 배우자이든 자식이든 이웃이든 곁에 있는 이든 멀리 있는 이든...
피부색과 성별이 달라도 믿고 마음을 나누며 우정을 돈독히 하는 그들을 보면서 지난 1박 2일의 속상함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우리 둘(남편과 나)의 캐릭터는 노년에 어떤 케미를 보여줄까. 사랑이든 우정이든 돈독해져야 할 텐데...
내가 왜 글을 쓰는지 글을 모으고 북을 만드는지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또 온 듯하다. 이쯤 되니 이런 생각을 주기적으로 해야 하나 싶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무엇을 쓰고 싶은가. 이곳에 왜 공유하는가 하는...
일상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했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달래면서 아이들과 가족을 더 사랑하고자 했던 게 아니었던가. 내가 글을 쓴다고 아이들은 방치되고 남편과 가족들이 소외된다면 그건 애초의 내 글쓰기 목적과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잠깐 브런치북을 편집하면서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건 좋지만 내 곁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서운하게 하고 싶지는 않다. 혹시 서운할지라도 이 정도는 봐주면 좋겠는 마음이 있기도 하지만.
내가 언제 나를 위해 이런 시간과 에너지를 쓴 적이 있던가. 오래된 안경 하나도 다시 맞추러 갈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 걸. 늘 우선순위에서 내 것들은 뒤로 밀리면서 결국 다음에, 다음 달에, 다음 해에 하다가 사라진 게 투성인 걸. 세상 모든 엄마들의 길을 나도 따라가고 있는 걸. 결혼 10년이 되던 작년 초엔 왠지 막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삶을 남편과 아이들이 강요한 것도 아니고 내가 선택했음에도 그냥 서글펐다. 물론 남편을 비롯한 세상 모든 아빠들도 억울하고 서글픈 게 있겠지. 작고 어린아이들은 누가 돌보나 하며 다시 마음을 추슬렀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그걸 증명했다. 그러다가 브런치를 만나 이러고 있는데 좀 봐줬으면 한가 보다.
늘 그렇지만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 것 같다. 이 글도 그렇고. 혼자서 좋다고 글 쓰면서 혼자만 글 속에서 소통하다가 대뜸 생활과는 먼 것들을 물어보고는 답을 피하니 토라지다가 영화 한 편 같이 보면서 풀어 버리니 말이다. 남편 입장에선 어이가 없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내 눈치를 보면서 기분을 맞추려고 애쓴다. 뒷북이라 많이 아쉽지만 지금은 맞장구 쳐줄 공간이 있기에 너그러이 푸는 게 맞는 것 같다. 아직은 혼자서 북 치면 남편은 뒷북을 열심히 친다. 살아가면서 그 시차가 짧아지길 바랄 뿐이다.
이곳에 글을 쓰면서부터는 혼자서 친 북에 맞장구가 돌아오기도 해서 신이 나고 눈물겨운 적도 많다. 또 내가 찾아가서 맞장구를 치는 것도 참 기분 좋다. 글로 이렇게 폭넓게 마음을 나누는 경험을 어디서 또 해보겠는가. 원래 책 속에서 길을 찾고 지혜를 얻고 마음을 위로받으며 살아와서인지 이 곳이 마음의 고향 같기도 하다. 마음의 고향 같은 글과 책을 만나면 얼마나 편안하고 따스한지 모른다. 그걸 남편도 함께 나누면 좋으련만...
우린 서로의 고향 어느 골목에서 서성대고 있을까?
길은 연결되어 있겠지? 마음은 풀려도 질문이 생긴다.
다음엔 또 어떤 영화를 같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