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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솔 May 22. 2021

반복과 변주

일상 이야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었던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중에서 20대에 이 시를 읽었을 때 느낌과 40대가 되어 이 시를 읽는 느낌은 참 다르다. 20대의 나도, 이 시를 읽으며,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10대에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고작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쓰지 않았으리라”라는 문구나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라는 부분이 와 닿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40대의 나는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라는 부분에서 뭉클해진다. 20대의 나는 이미 인생을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40대의 나는 인생을 참으로 모르겠다.
최근에 몸도 마음도 힘겨운 시기가 있었다. 인간관계도, 일도 부담과 피로의 연속이었다. 사회 초년생일 때, 언젠가 나도 여유롭게, 자신만만하게 인생을 살 날이 올 것이라 믿었고, 어느 때는 정말 그렇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기와 기간만 다를 뿐 인생은 언제나 행복과 시련, 즐거움과 고통의 경계를 오고가며, 끊임없이 나 자신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기분이 든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끊임없는 반복이다. 밥을 먹고, 화장실을 가고, 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고,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고... 일상은 온통 어제와 오늘과 내일의 반복으로, 사람을 질리게 한다. 그 와중 이벤트라고는 더 과중한 일이 있느냐 없느냐, 아이가 말썽을 피우느냐 피우지 않느냐 따위의 차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끔찍한 반복 속에 일어나는 이러한 변주들이 엄청난 스트레스를 가져옴에도 ‘카타르시스’도 함께 가져온다는 것이다. 지루한 패턴 속에 정신이 확 드는 변주가 끼어들면 온 신경에 날이 서고, 초조와 긴장을 가져오지만, 그것이 지나고 다시 찾아온 반복은 지루함이 아니라 안정감으로 다가온다.


반복과 변주, 그 속에 시(詩語)도, 음악도 예술이 된다. 우리의 일상도 반복과 변주 속에 완성되어 갈 것이다. 인생은 자주, 그 자체가 큰 흐름을 가진 듯 나를 꼼짝 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반복과 변주로 조여 온다. 하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들여다보면 그 모든 반복과 변주의 주체는 나 자신이다.

일상을 지키는 힘은 반복이며, 일상을 버티는 힘은 변주다. 반복과 변주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그 몫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인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하고 자꾸만 나를, 인생을 들여다보는 수밖에!


오늘도 반복과 변주 속에 사투를 벌이는 나와 당신들을 위해 “화이팅!!”


2018. 10. 1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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