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알림이 울린다.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신기하다.
그래서 라이킷을 눌러준 작가님을 팔로우하고, 그분의 글을 읽으러 들어간다.
웃다가, 울다가, 여전히 부족한 나의 문해력을 깨닫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렇게 많은 작가들을 알게 된 것이 참 좋다.
사실 나는 한동안 글을 쓰지 않은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일기 쓰기를 멈췄다.
나는 어릴 때부터 일기 쓰기를 좋아했다.
방학 숙제로 밀려 쓸 때는 곤욕이었지만, 중학생이 되고부터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기를 썼다.
학급에서 쓰던 나눔 일기도 진심이었다.
선생님께서 내 글을 친구들 앞에서 소개해 주시던 날의 기분도 아직 어렴풋이 남아 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베란다 장 안에 빗물이 들어 그 속에 있던 내 일기장들이 모두 젖었다는 것이다.
결혼할 때 두고 온 나의 일기장들.
“이제 그만 버려라. 그 안에 남이 보면 안 되는 것도 있을 수 있고…”
옆집이었다면 당장 달려가 들고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살고 있었고, 아이들도 어려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는 공사를 해야 한다며 재촉하셨고,
그렇게 결혼 전의 나를 품고 있던 일기장들은 젖은 채로 버려지고 말았다.
내 기억에 남이 보면 안 될 만큼 특별한 비밀은 없었던 것 같은데,
엄마는 무엇을 걱정하셨을까.
그 일을 겪고 난 뒤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내가 쓰는 이 글들도 언젠가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리되어 버려질 텐데,
괜히 힘들게 할 필요가 있을까.
굳이 남겨두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 사람의 역사는 결국 그 사람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라면,
나는 왜 이렇게 적고 있는 걸까.
그 생각이 오래 나를 붙들었다.
브런치 첫 발행글 《소원에도 유효기한이 있다》를 읽고 문자를 받았다.
' 제목이 궁금해지게 했고, 집에 대한 생각을 조목조목 풀어낸 내용이 잔잔하면서도 감동이었다.'라고 했다.
그 문자를 읽는 순간, 젖어 버린 일기장들이 떠올랐다.
버려졌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의 마음 안에 남아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까.
쌓여 있던 글들이 나를 밀어낸 것인지,
글들이 밖으로 나오고 싶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나의 글이 브런치에 나왔다.
브런치를 통해 또 다른 인연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바람이 나를 어디에 데려다 놓을지 늘 궁금해하며 살아왔듯이.
이번엔, 내게 어떤 인연을 만나게 할까.
나는 조용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