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브로커》가 건넨 한 마디
“뭐, 흔하게 하는 ‘태어나줘서 고마워’ 같은 말이라도 해.”
상현(송강호)은 우성과 헤어지는 마지막 밤, 소영에게 아들에게 한마디 해보라고 합니다.
그때 해진(보육원 아이)이가 우리 모두에게 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평소 잘 웃지도 않던 소영(아이유)은 어색한 미소를 띠며 그러자고 합니다.
소영은 침대에 눕고, 해진이 그 옆에 눕습니다. 동수(강동원)는 불을 끄자고 합니다.
불이 꺼지고, 동수는 소파에 앉습니다. 숨소리조차 멈춘 듯 정적이 흐르는 호텔 방입니다.
흔한 말 한마디를 듣는 자리치고는 지나치게 엄숙한 분위기입니다.
소영의 입을 통해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불립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라는 말이 건네지는 순간입니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스크린 너머로 무언가 스르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돌아누운 상현의 어깨가 들썩입니다.
이어 해진이 말합니다.
“소영이,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날 밤, 그 말은 다섯 사람 모두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선함과 악함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베이비 박스에 들어온 아이를 가로채 돈을 받고 입양시키는 행위만 보면 분명 악입니다.
그러나 상현과 동수는 돈을 많이 주는 양부모보다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해 줄 사람을 찾으려 애씁니다.
우성이를 한시도 떼어놓지 않고 안아 주고 돌봅니다.
아기가 위험에 놓인 이야기임에도 울음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기는 편안하고 안정되어 보입니다.
누구도 서로를 원망하거나 나무라지 않습니다.
몰래 차에 오른 해진을 혼내기보다 관람차를 타고 싶다는 소원을 들어줍니다.
소영의 블라우스 단추를 달아 주면서도 생색내지 않습니다.
딸에게서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들어도 화를 내지 않습니다.
“네가 원하지 않으면 우리가 키우겠다.”라고 말하며 소영의 의사를 묻습니다.
이런 모습이 악한 사람의 행동이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서로의 상처를 알기에 비난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이해하려 합니다.
이들을 도청하던 경찰 수진(배두나)은 고백합니다.
“아기를 가장 팔고 싶어 했던 사람은 나였던 것 같아요.”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목표에 몰두한 나머지, 자신의 삶은 사라지고 오직 악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침이 밝고, 각자의 선택이 이어집니다.
상현은 우성을 데려가려는 남자를 살해합니다.
끝없이 사람을 쫓아다니며 삶을 무너뜨리는 사람을 제거하는 일이
과연 악이라고만 말할 수 있는지 묻게 됩니다.
동수는 경찰에 브로커 일을 알리고 현행범이 됩니다.
수진은 우성을 돌보기로 하고, 소영은 자수합니다.
해진은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갑니다.
해결되지 않을 것 같던 일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상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 치유가 시작된 열린 결말입니다.
수진은 우성의 미래를 위해 소영과 입양을 원하던 부부에게 메시지를 보냅니다.
처음, 막막함 속에서 베이비 박스를 선택했던 소영의 상황과는 달리, 이제는 도움의 손길이 있습니다.
불법 입양, 청소년 가출, 성매매, 아동 유기, 미혼모, 살인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영화는 자극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따뜻하고 차분합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그 상처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누군가가 그 상처를 어루만져 주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흔한 한마디를 기다리며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태어나줘서 고마워.”
가족이 아니어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보여 줍니다.
부족하고 어설퍼 보이지만,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헌신적인 상현의 모습이 오래 남습니다.
이런 아버지가 이 땅의 모든 사람에게 한 사람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만나는 사람이
존재만으로 귀한 사람임을 잊지 않고
대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