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가 그냥 넘기기엔 아쉬운 문장이 있으면 책 귀퉁이를 접어 둡니다. 그게 도그지어(dog’s ear)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강아지 귀처럼 접힌 자리라니. 이름을 알고 나니 괜히 더 애정이 갑니다.
얼마 전 《거인의 노트》를 읽던 남편이 물었습니다. “여기 포스트잇 당신이 붙였지?” 나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적힌 글씨는 분명 내 것이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읽은 흔적은 남아 있는데, 읽은 기억은 희미했습니다. 남편이 한마디를 보태더라구요.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분류를 잘해 둘 필요가 있어.” 맞는 말입니다. 늘 고민하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에디톨로지》를 읽고 김정운 교수처럼 카드를 분류할 상자를 마련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한때는 책장을 접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색색의 포스트잇을 붙입니다. 양귀자 소설 《모순》을 읽을 때는 멋진 문장은 노란색, 삶의 모순을 짚어내는 문장은 보라색으로 나누어 붙이기도 했습니다. 기억해 두고 싶은 멋진 문장이나 새로운 자극을 주는 문장을 만날 때 너무 설레고 좋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필사를 해 보라는 조언도 마음에 담아 봅니다. 여러 번 읽어 자기 것으로 만들라는 말도 받아들여 실천해 보려 애씁니다.
문장이 마음에 들어서 문장을 가져와 글을 씁니다. 글의 소재가 됩니다. 근데 그 시기를 놓쳐버리면 영원히 잊어버리고 맙니다. 가끔은 며칠씩 떠나지 않아 결국 글을 쓰게 만드는 문장들이나 단어들도 있긴합니다. '도그지어'처럼.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을 읽다가 도그지어를 할 수 없어서 구입 한 책들이 있습니다. 구입하지 못할 때는 노트에 메모를 해두기도 합니다. 늘 그때뿐 인 것 같아 아쉽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면 그 문장들이나 단어를 붙들어 둘 수 있을까요?
이어령 교수님의 글을 읽다 보면 한 단어를 붙들고 사방으로 확장해 나가는 힘을 보게 됩니다. 왜 석학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습니다. 사람의 사고는 어휘의 깊이만큼 확장되는지도 모릅니다.
‘나는 죽는 날까지, 세계가 끝나는 날까지 글을 쓸 것입니다… 아직 내 열정과 사랑과 증오가 식어버리기 전에 추운 겨울에도 피는 수선화처럼 고개 들고 일어서는 언어들을 찾아내야 할 것입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중》
추운 겨울에도 피는 수선화처럼 고개 들고 일어서는 언어들이 나에게서 돋아나길. 접어 둔 문장이 언젠가 나의 것이 되어 꽃 피우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