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

by 김선영

'눈 깜짝할 사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세월을 떠올립니다. 돌아보면 금세 지나가 버린 것 같은 시간, 붙잡고 싶었지만 이미 저만치 흘러가 버린 날들 말입니다.


2026년 해돋이의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벌써 3월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달력을 넘기다가 길벗스쿨에서 펴낸 그림책 《눈 깜짝할 사이》가 떠올랐습니다. 글은 호무라 히로시, 그림은 사카이 고미코가 맡았습니다.


책에는 여섯 개의 단어가 등장합니다. ‘사-뿐, 째깍, 앗, 퐁-, 갈색머리 여자아이.’

사카이 고미코는 각각의 단어에 세 장의 그림을 그려 두었습니다. 첫 장과 두 번째 장은 거의 변화가 없어, 혹시 잘못 넘긴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 번째 장에서 비로소 변화가 드러납니다.


처음에는 나비와 꽃이 나옵니다. 나비가 꽃 위에 소리 없이 ‘사-뿐’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갑니다.

다음 장에서는 시침과 분침이 하나가 되어 ‘째깍’ 소리를 냅니다. 겉보기에는 아무 변화도 없는 듯하지만, 문이 열리고 새 한 마리가 나옵니다.

세 번째 장면에서는 고양이가 생쥐 인형을 보고 ‘앗’ 놀랍니다. 그리고 단숨에 인형을 움켜잡습니다.

네 번째 장면에서는 찻잔에 각설탕을 ‘퐁-’ 떨어뜨립니다. 차가 일렁이고, 어느새 각설탕은 흔적 없이 녹아 있습니다.

다섯 번째 장면에는 찻잔을 내려다보는 여자아이가 등장합니다. 그림 옆에는 ‘갈색머리 여자아이’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다음 장면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아이의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고 머리는 하얗게 세어 있습니다. 그 순간, 저절로 “아!” 하는 탄성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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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우리가 흔히 ‘눈 깜짝할 사이’라고 부르는 찰나의 순간들을 보여 준 뒤, 갈색머리 여자아이가 흰머리 할머니로 변하는 장면을 통해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순간들이 모이고 쌓여, 결국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봄 햇살이 외투를 벗겼나 봅니다. 싱그럽고 풋풋한 여중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봄 햇살보다 더 밝은 미소를 머금고 걸어옵니다. 그 아이들을 바라보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때의 내가 떠오릅니다. 회색 카디건에 카키색 반바지, 워커를 신고 전화부스에서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던 내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봄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나는 그 아이들에게 살짝 미소를 보냅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 시절의 나는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안 어딘가에 여전히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인생은 15분 늦게 들어간 영화관과 같다.”(로맹 롤랑)는 말이 있습니다. 낯설고, 무엇이 무엇인지 몰라 허둥대기도 하지만, 장면은 이미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평범한 하루를, 그냥 넘기지 않고 조금 더 바라보고 싶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일지라도, 그 사이에 쌓이는 것들이 결국 나의 삶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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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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