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반느
영화《파반느》를 보고 먼저 ‘파반느’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습니다. 파반느는 16세기 유럽 궁정에서 추던 느리고 장중한 춤이라고 합니다. 귀족들이 줄을 맞춰 행진하듯 천천히 발을 옮기던 무곡이 시간이 흐르면서 춤 자체는 사라지고 장중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음악 형식으로 더 오래 남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파반느’라는 말에는 느림과 품위,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울림이 함께 배어 있습니다.
영화의 원작 표지에는 Las Meninas 이 실려 있었습니다. Diego Velázquez의 그림《시녀들》입니다. 그림을 보는 순간, 오래전 독서지도사 자격증을 준비하며 읽었던 《바르톨로매는 개가 아니다》가 떠올랐습니다. 난쟁이 앞에 엎드린 개 한 마리에서 이야기를 길어 올린 작품이었습니다. 이 번엔 난쟁이를 돋보이게 해 둔 것을 보니 죽은 왕녀로 생각하나 봅니다. 서양화 중에 제일 많이 연구되었다고 하니 많은 작가들에게 상상과 영감을 주는 역할을 하는 명작입니다.
93.1 나도 운전을 할 때면 라디오를 89.7에 맞추어 둡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KBS 클래식 FM'입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그 시간은 오롯이 나만를 위한 작은 연주회장이 됩니다. 차 안에서 선율이 흐르면 음악이 나를 감싸 안는 듯한 느낌입니다. 마음이 흐트러진 날에도 길 위에서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어느새 드라마 속 인물처럼 다른 장면으로 들어가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사랑에 빠지는 장면에서 배경 음악이 바뀌듯, 음악은 방금 전까지의 나를 조용히 다른 세계로 옮겨 놓습니다.
영화《파반느》는 주인공 박요한의 상상 속 이야기인지, 누군가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것인지 모호하게 오가지만, 그 모호함이 오히려 사랑이라는 감정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사랑을 분명하다고 믿는 순간에도 이미 흔들리고 있고, 영원할 것이라 확신하는 순간에도 불안을 함께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정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립니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잠시 내려 자신이 달려온 길을 바라본대요. 혹시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기다려 주는 거래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를 너무 빨리 끌고 가려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내 속도를 그의 속도라 착각하지는 않았는지, 이해한다고 말하면서 사실은 이해받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모든 사랑은 오해다.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는 오해...”
눈 오는 밤, 그를 붙잡지 않았던 선택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또렷한 후회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완벽한 선택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순간의 최선을 붙잡고 살아갈 뿐입니다. 모든 사랑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실패까지 혼자 짊어질 필요는 없습니다.
"서로의 영혼에 빛을 밝혀주는 거야."
사랑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빛을 건네는 일입니다. 그 사람이 삶을 다시 살아볼 힘을 얻도록 조용히 곁에 서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결국 사랑은 상상하는 일이다.”
이 영화에서 내가 뽑은 명대사입니다. 여러번 꼽씹어 보았습니다. 사랑은 어쩌면 사실 그 자체라기보다, 우리가 끝내 포기하지 않으려는 한 장면의 상상일지도 모릅니다. 상상력을 발휘하며 살아보려 합니다.
장중하고 느리게 파반느처럼.
https://youtu.be/Dac2-93eeZQ?si=VSuIKqoJ2GYWiOA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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