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안녕이라 그랬어》를 읽고 다시 묻는 안부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딸아이의 책꽂이에 꽂혀 있던《비행운》이었습니다. 그 뒤로 생일 선물로 받은《바깥은 여름》을 읽었을 때만 해도, 제 감상은 그저 "재밌네" 정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지만 김애란이라는 이름이 제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건 방송대 현대소설론 대면 수업 때였습니다. 교수님이 한국 성장소설로 소개해주신《달려라 아비》를 읽으며 감사평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독자로 하여금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문장의 마술사가 맞다.”
그 이후 '끌어안는 소설'에 묶여 있던《플리이데이터리코더》통해 만난 김애란은 제게 더 알고 싶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신작《이 중 하나는 거짓말》을 읽으며 그 통찰의 깊이에 압도당했고, 책을 덮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질문들에 한참을 붙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읽고 싶었던《안녕이라 그랬어》는 도서관에서 늘 ‘대출 중’이었습니다. 마음의 시간은 대출 기한인 보름보다 훨씬 길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도서관 안내데스크에 가서 "왜 이렇게 좋은 책을 한 권씩만 들여놓으세요?" 하고 어린아이 같은 투정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예약과 기다림 끝에 비로소 그 책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안녕이라 그랬어》에 등장하는 여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저를 닮아 있었습니다.
대화에 잘 끼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던 이연
엄마에게 용돈을 보내며 늘 미안해하던 은주
나보다 못하다고 여기는 이에게 베푼 호의로 위안을 삼던 주희
자랑스러운 딸이 되지 못해 안타까워하던 기진
특히 주희와 지수는 학습지 교사를 하다가 집에서 논술 교습소를 운영합니다. 저 역시 한때 그들과 똑같은 시간을 살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그들의 고민은 곧 저의 고민이 되었고, 저는 소설 밖으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작가의 이전 소설들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멈출 수 없게 했다면, 이번 작품은 제 안을 향해 던지는 '질문'들 때문에 자꾸만 저를 멈춰 세웠습니다.
그중에서도 「좋은 이웃」에서 주희가 던진 질문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원하는 때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저 역시 소설 속 남편 호준처럼 재산을 불릴 수 있었던 기회나 더 좋은 직장을 잡을 수 있었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은 저의 얕은 생각을 보기 좋게 무너뜨렸습니다.
“사실 남편과 타임머신 대화를 나눴을 때 나는 남편이 우리만 아는 그때, 우리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대답할 줄 알았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제가 애써 감추어 두었던 가장 아픈 마음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이를 살릴 수 있는 그때로 가고 싶었습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몸을 낮추어야 하는 고단함, 병든 부모를 간호하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상실, 원하는 집에 살지 못하는 고단한 현실들...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그 모든 삶이 김애란의 시선 속에 담겨 있었습니다.
만났을 때 반가워서 “안녕”, 헤어질 때 아쉬워서 “안녕”.
“평안하시죠.” 혹은 “평안하세요.”라는 그 모든 다정한 안부가 이 짧은 한 단어에 들어 있었습니다.
“비는 한 집 위에서만 내리는 게 아니다.”라는 카메룬의 속담처럼, 불행도 슬픔도 어느 한 사람에게만 머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안녕을 묻고 또 빌어야 하나 봅니다.
오늘도 저는 제 몫의 삶을 견디며 자라나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