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지만, 괜찮네

by 김선영
-처음이사왔을 때- 거실 서재


수육이 냄비 속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냄새가 난다. 평소라면 익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리모컨을 습관적으로 돌리며 의미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을 테지만, 오늘의 나는 대리석 식탁 앞에 앉아 글을 써 내려 가고 있다.


남편이 아파트에 입주할 때 큰맘 먹고 들인 86인치 TV가 있었다. 빌라로 이사를 결정했을 때,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크고 위험해서 옮기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남편은 “부서져도 좋으니 일단 가져가자”며 끝내 고집을 부려 옮겨왔다. 집 평수를 줄이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못했던 두 가지, 바로 그 거대한 TV와 6인용 대리석 식탁이었다. 그 식탁은 지금 나의 소중한 글쓰기 작업대가 되어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우리의 꿈은 거창했다. 거실을 책과 음악이 흐르는 서재로 만들고 싶었다. TV는 작은방에 넣어 아늑한 영화관처럼 꾸몄다. 하지만 현실은 이상과 달랐다. 밤마다 우리는 자석에 이끌리듯 좁은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주말에도 그 좁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 드라마를 보고 간식을 먹었다. 거실의 대리석 식탁은 책상이 되어보지도 못한 채, 갈 곳 없는 물건들이 층층이 쌓여갔다.


명절에 온 아이들까지 넷이서 그 좁은 방에 꽉 끼어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웃음이 터졌다. 넓은 거실을 두고 우리는 왜 이 좁은 틈바구니에 모여 있을까.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 삶의 중심축이 여전히 ‘TV’에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결국 항복을 선언하고 TV를 거실로 끌어냈다. 대신 6인용 식탁과 책장은 방으로 밀려났다. 대리석 식탁은 방문을 떼어내고 만들어 놓은 아치형 통로를 간신히 통과할 수 있었다. 거대한 TV를 장식장에 올릴 때는 팔이 덜덜 떨렸지만, 배치를 마치고 나니 비로소 집이 제 자리를 찾은 듯한 안도감이 들었다. 우리의 이상은 그렇게 현실과 타협했고, TV가 떡하니 거실에 있는 집이 되었다.

-현재- TV 가 있는 거실

매일 밤 뉴스를 시청하는 것은 우리 부부가 하루를 마감하는 의식 같은 것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리모컨 전원을 눌렀다. 본체의 불빛은 빨간색에서 파란색으로 변했지만, 화면은 끝내 깨어나지 않았다. 찰나의 번쩍임 뒤에 찾아온 것은 깊은 어둠이었다. 코드를 뽑았다 다시 꽂아 보고, 온 집안의 불을 끄고 재시도해 보아도 86인치의 검은 화면은 묵묵부답이었다. 파워 보드 이상일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수리 기사를 부르는 대신 우리는 잠시 멈춰보기로 했다.


TV 없는 저녁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우리는 이제 TV 앞 소파가 아니라 식탁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화면의 소음 대신 잔잔한 음악이 집안의 공기를 채운다.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며 소파에 누워 책을 읽는 여유도 생겼다. 무엇보다 서로의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시간이 눈에 띄게 길어졌다. 이사 오며 그토록 꿈꾸었던 ‘거실 서재’의 풍경이, 아이러니하게도 TV가 고장 난 덕분에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A/S를 부를까, 새로 살까 고민하던 마음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이 시간을 조금 더 누려보고 싶어서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풍경이 마음에 든다.


휴가 나온 아들과 함께 본 영화《어쩔 수가 없네》가 이 TV의 마지막 영화가 되었다. 어쩔 수 없지만, 괜찮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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