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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시민 Nov 13. 2021

천 개의 파랑 ; 가장 따뜻한 색은 블루가 맞나봐

SF인데 가슴이 왜 이렇게 찡한지


소설이면 좋아라 하고 덤비듯 읽지만 SF는 크게 흥미가 없는 편.

현실에 닿아있는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다 읽는 책을 혼자 안 읽을 순 없지.

제목도, 표지도 예뻐 구매했다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읽었다.

단숨에 확 읽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읽어본 SF 중 가장 따뜻하고 오래 남았다.






보통 SF책이라 하면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하며 감탄을 내뱉게 하던데

이 책은 정교한 과학적 설정에다가 자꾸 가슴을 찡하게 하는 뭔가가 있다.

그 찡함이 이 소설이 다른 SF에는 없는 차별점 같다.


책의 주인공은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이 많다.

수도 없이 출전한 경마 경기로 관절이 다 닳아버린 말, 투데이.

투데이를 위해 낙마를 선택한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

콜리에게 이름과 삶을 선물해준 연재.

불편한 다리지만 누구보다 자유로운 은혜.

시간에 고여 홀로 아파했던 보경.


등장하는 캐릭터가 많으면 서사의 힘이 분산돼 캐릭터에게 느끼는 애정 역시 흩어지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모든 인물이 다 짠했고 좋았고 예뻤다.






인간의 이기심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유희를 위해 종일 가둬놓은 말을 줄기차게 채찍질해 경마에 올리고

인간은 다칠 수 있으니 기수용 로봇을 만들어 더욱 자극적인 경마를 연출.

관절이 닳아버려 잘 걷지도 못하는 투데이가 어쩜 그리도 눈에 선한지.

집에 반려견을 들인 후로는 동물에 관련된 가슴 아픈 이야기를 잘 읽지 못한다.

이 책도 그래서 단숨에 읽을 수가 없었다.

책장을 넘기기 아깝게 좋은 책이기도 했지만 마음이 콕콕 따가워서 숨을 고르는 과정이 필요했다.

지구에서 인간만 없어지면 모든 게 다 좋아질텐데.

내가 인간이라 미안하다.






아래는 책을 읽으며 인상깊게 다가왔던 구절들.



콜리에게 알려줘야겠다.

인간에게는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의 속내를 알 수 있는 기능이 아예 없다.

다들 있다고 착각하는 것뿐이다.



연재는 시간이 없어 지금 다 설명하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는 자리를 피했다가 헐레벌떡 집으로 다시 돌아와 도리어 은혜에게 물었다.

"언니는 자유롭고 싶은거지?"

"나는 이미 자유로워."






가장 따뜻한 색은 블루라더니 하늘을 수놓은 파랑을 천 개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감정을 느끼지 못해도 말을 나누고 마음을 나눌 수 있다면,

굳이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나눌 필요 있겠는가.

인간이었다면 투데이의 질주가 마지막임을 알았어도 감히 낙마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절대 낙마하지 못했을 것이다.

콜리 덕분에 책을 읽는 동안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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