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다해 파티

by SyaMya

덴마크 회사, 학교, 기관에서는 본격적 여름휴가 시즌 시작 전에 파티를 한다. 워크숍, 회식이 아닌 진정한 파티다. 각 단체는 파티 전담 팀을 미리 구성하고, 팀원들은 수개월에 걸쳐 파티 장소, 주제, 프로그램, 음식 등을 준비한다. 보통은 식당이나 행사장을 대여해서 파티를 열지만, 볼링장, 미니 골프장, 방탈출 카페, 테마 견학, 캠핑처럼 체험 활동을 하기도 한다.

파티에는 반드시 주제가 있어야 하고, 참석자들은 조를 이루어 주제에 따라 주어진 일종의 게임을 하고 결과에 따라 시상을 하고, 일부 구성원들의 합창이나 덴스등 발표 시간이 있을 수 있다. 활동을 마치면 식사 그리고 댄스파티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각 기관들이 여름 파티에 어떤 의미를 두고 있는지, 그 기원은 어디인지 알 수는 없으나, 파티의 전체를 관통하는 정신은 역시 공동체 의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공동체 의식이라니, 그럴듯하게 들리는 표어이나 다소 강제적이고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행사에 참석해 역시나 인위적 미소를 지어야 하는 곤욕을 직접 겪는 것은 언제나 망설여진다. 한국어 교사로 학원에 소속된 지는 벌써 수년이지만, 그간 여름 파티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늘 그때를 맞추어 개인적 스케줄이 있었던 것이다. 한 번도 아쉬운 적은 없었고, 정당한 핑계가 있는 것이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남편을 포함한 지인들에게 듣고, 아이의 학교에서 몇 번 경험한 여름 파티를 미루어 학원 파티 분위기도 어느 정도 짐작 할 수 있었다. 나 같은 건조한 인간에게는 상상만으로도 피곤이 몰려오는 시간이 될 것이 확실했다. 그러나 올해는 어쩐지 파티 일정에 맞춘 개인적 사정이 발생하지 않았고, 학기가 끝나기 전에 파티가 열리는 바람에 불참할 만한 적당한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한 번은 해보자. 그래. 이제 덴마크 생활도 8년 차에 접어드는데 '들어서 아는데' 보다는, '내가 해봐서 아는 데'가 아무래도 적절할 듯했다.

학원의 직원 파티는 여름이면 음악과 음식으로 아주 핫한 해변가의 한 건물에서 열렸다. 예전에는 화분과 식물을 판매하던 가드닝 샵이었지만 이제는 영업을 하지 않고, 식물원도 아니고, 컨테이너도 아닌 건물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 캐이터링을 하는 행사장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파티에는 200여 명의 강사와 행정 직원들이 참석했다. 들어가면서부터 어색함을 어찌하지 못하는 나는 그나마 일면식이 조금 있는 선생님들을 가까스로 찾아 조용히 스며들기 신공을 펼치기 위해 애를 썼다.

아직 미처 스며들지 못한 채 장착한 미소만 남발하고 있는 차에 진행자가 행사 시작을 알렸다. 진행자는 우리 학원이 시에서 인증받은 예체능 학원의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다는 중대 발표를 했고, 그에 따라 미리 조를 짜두었으니 각자 조원들을 찾아 학원이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 사조와 그것을 뒷받침할 시, 그림, 풍선 조형물, 해석, 사진을 준비하라고 했다. 물론 중대 발표의 내용은 거짓이었고, 일종의 유희였는데, 나 빼고 모두 박장대소를 하였다. 10명 정도의 조원이 모였고, 나는 그중 딱 한 명 사무실 직원과 안면이 있었다. 이번에도 나 빼고 모든 사람은 이 상황이 자연스러운 듯했고, 예술 사조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거쳐 Circleism이라는 사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신속하게 인원을 나누어 작품을 준비했다. 어정쩡한 나는 어찌하다 그림을 맡았고, 어정쩡한 색색의 원을 수도 없이 그리는 것으로 Circleism을 표현했다. 다른 조원들은 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버블, 교차 문화, 이민자, 약자 통합, 공동체와 같은 화두로 Circleism을 해석했고, 모든 차이가 순환하는 다채로운 원이라는 의미가 담긴 조형물과 시를 탄생시켰다. 끝으로 모두 팔로 원을 그리며 서로의 원에 연결되는 자세를 취하는 사진을 찍어 제출했다. 나는 그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고, 관찰자도 참가자도 아닌 어정쩡한 나의 입장이 어색했지만, 아무도 내가 어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 듯했다. 결국 우리 조는 전체 2위라는 놀랄만한 성공을 이루어냈고, 포옹을 하며 서로를 축하했다. 조별 발표물들은 행사장 벽에 모두 걸렸고 식사 전에 제공된 샴페인을 손에 들고 다른 조의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학원 선생님들로 구성된 합창단의 공연을 감상하고 뷔페식으로 준비된 식사를 하고 나니, DJ와 바텐더가 등장했다. 몇몇 선생님들이 춤을 추었고, 몇몇은 테라스에서 칵테일을 즐겼고, 나는 동석한 선생님들과 하나도 진지할 것 없는 담소를 나누다가 DJ를 둘러싼 선생님들의 춤사위가 절정에 이를 즘에 자리를 떴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지만 북유럽 여름밤은 아직 오지 않아 환했다. 돌아오는 길에 여기저기 파티를 하는 식당이 눈에 띄었다. 저 안에도 나처럼 어정쩡하게 파티를 즐기지도 피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

놀 줄 모르고 사사로운 즐거움을 누릴 줄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은 모여서 게임이나 하고, 상황극이나 하고, 춤까지 추는 어른들의 모임이 어렵다. 뭐 저런 일에 저토록 진심일까? 아마도 그것이 덴마크에서 7년을 살면서 내가 제일 많이 했던 생각 일 것이다. 파티가 끝나고 나면 아는 얼굴이 조금 많아진다는 것 외에 남는 것도 없을 텐데, 덴마크 사람들은 그 일에 그토록 진심이다. 준비하는 사람도, 참여하는 사람도 진심이다. 진심으로 준비했지만 행사는 어딘지 촌스럽고 어수선하다. 그럴수록 진심만 더 도드라져 오로지 진심들이 모여 웃고 마시고 몸을 흔드는 것처럼 보인다. 여름 파티에 진심을 다하는 것이 유전 혹은 민족성이 아닐까 라는 생각에 이를 만큼 나에게 이러한 진심은 이해가 어려운 영역이다.

나는 아마 이제 매년 여름 파티에 참석할 것이다. 비록 나에게 진심은 하나도 없지만 기원을 알 수 없는 성인들의 아이 같은 진심들이 모인 경이로운 장면을 1년에 딱 한번 만날 일을 피할 이유가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앞으로도 나는 '참 하찮다. 이게 그렇게까지 진심을 쏟을 일인가?'라고 혼자 피식 웃으며 아직 밝은 저녁에 귀가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나는 그 하찮은 진심이 늘 부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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