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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yaMya Aug 28. 2018

학교를 기다리며

개학을 하고도 2주가 흘렀고 시아는 여전히 집에 있다.


덴마크에도 햇살은 뜨겁다고 일러주던 하늘이 구름에 얼굴을 숨기고, 비를 주룩주룩 내리는, 이 곳 사람들에게는 익숙하고 우리에게는 낯선 날씨가 찾아오는 동안, 우리에게도 작은 사건이 있긴 했다.


주소가 생기자마자 우리가 속한 지역의 교육 담당부서에 연락을 했고, 연락 이후 3일쯤 지나 다시 10일 후에 인터뷰할 거라는 연락을 받았다. 

인터뷰 대상자는 입학을 희망하는 시아이기 때문에, 시아가 편안한 언어가 어떤 언어인지를 물었다.

학교 교육은 이태리어로 받았으니 학업에 관한 내용은 이태리어가 편하다고 답했다.

이태리어를 구사하는 통역이 인터뷰에 동석할 것이라고 했다.

아침 일찍 약속 장소로 향했다. 테스트도 아니고 시험도 아니라고 했지만 우리는 모두 좀 긴장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렸다.

메일을 주고받고 전화 통화를 했던 담당자가 나와 인사를 했다.

약속대로 이태리어 통역사 한분도 함께 계셨다.

시아에게도 처음이지만, 우리에게도 처음이다. 학교를 들어가기 전에 인터뷰라, 무슨 질문을 할까? 의도가 뭘까?

인터뷰의 주체는 시아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시키며, 부모들은 편안하게 시아 곁에 앉아서 시아가 대답하기를 기다려 달라고 했다. 시아가 사살과 다른 대답을 하거나 대답을 주저하더라도 시아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했다. 그렇게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입장에서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고 환하게 웃으며 안심을 시켜주었다.

이태리어 통역사와 담당 선생님과 시아는 서로의 이름을 묻고 한 번씩 불러보았다.

시아는 잔뜩 긴장을 해서 입고 있던 카디건을 벗어 들고 꼭 쥐었다.

자꾸만 손에 땀이 나는지 연신 손바닥을 바지춤에 문질렀다.

이태리 학교는 어땠는지, 학교에서 친한 친구 이름은 뭔지, 쉬는 시간에는 뭐하고 놀았는지, 학교 선생님은 어땠는지,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인지, 학교에서 제일 재밌는 시간은 어떤 시간이었는지, 집에 오면 뭘 했는지, 주말에는 뭘 했는지, 덴마크에 왜 왔는지 아는지, 생일은 언제인지, 이태리에서는 얼마나 살았는지 물었다. 

천천히 덴마크어로 묻고, 똑 같이 천천히 이태리어로 통역을 해주셨다.

조금씩 대화를 하면서 시아도 긴장이 풀리는지 자세도 편해졌고, 목소리도 커졌다.

쉬는 시간에, 주말에, 학교 끝나고 시아는 밖에서 놀았다고 대답하면서 환하게 웃었다.

밖에서 늦게 까지 노느라고 집에서 다른 일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고 하면서도 다시 웃었다.

한글학교에서 한글을 배웠고, 한글을 배우는 게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한글학교에도 쉬는 시간이 많아서 참 재밌었다고 했다.

체조를 좋아하고, 구르기와 점프가 재미있다고 했다.

이탈리아 학교와 친구들이 참 좋았다고 얘기했다.

시아의 말에 그리움이 가득 담긴 것 같아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선생님은 덴마크 학교에서도 몸으로 표현을 하고 운동을 하는 시간이 많다고,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시아는 덴마크 학교가 꼭 마음에 들 거라고 해주셨다.

독서를 좋아하냐는 질문에, 독서가 어렵다고 답했다.

10이 제일 어렵고 1이 제일 쉽다고 한다면 1에서 10중에 얼마큼 독서가 어렵냐는 질문에 시아는 2라고 대답했다.

"그럼 독서가 어려운 건 아니네... 그렇지?"

"어려운 건 아니지만, 책을 읽는 건 힘들어요."

"왜 힘들까? 힘들지 않은 건 어떤 거야?"

"밖에서 노는 거. 체조. 수영. 그런 건 안 힘들어요."

"아,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체조, 수영, 밖에서 노는 걸 하고 싶어서 책을 읽고 있는 게 힘들구나."

"네, 맞아요."

시아도 선생님도 웃었다.

읽기, 쓰기, 산수에 대한 간단한 질문들이 있었고 수월히 대답했다.

"영어를 할 줄 아니?"

"학교에서 조금 배웠어요."

"그럼 내가 영어로 질문해볼게. 대답해볼래?"

시아가 눈을 크게 뜨고 의자를 당겨 앉으며 선생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영어 교육이라는 걸 시킨 적이 없다. 학교에서도 일주일에 딱 한 시간 간단히 배웠을 뿐이기 때문에 시아가 영어로 대화가 가능할 리가 없다.

그런데, 시아가, 좋아하는 색이 어떤 색인지 대답도 하고,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물건을 가르치기도 한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에게는 당연하거나, 당연에 못 미치는 실력이겠지만 우리는 놀랐고 감격했다.

땀이 잔뜩 묻은 손으로 보라색 펜을 붙들고 purple이라고 할 때는 뽀뽀를 할 뻔했다.


진지하게 대답하는 시아에게 혹시 조금 쉬었다 다시 하고 싶은지 물으셨다. 

여덟 살이 이렇게 오래 집중하는 건 힘든 일이니, 쉬고 싶으면 엄마 아빠랑 잠깐 나갔다 와도 되고, 여기서 편하게 앉아 쉬어도 된다고 하셨다.

"아니요. 괜찮아요. 쉬었다 하면 더 힘들어요."

그리고 한 삼십 분을 더 얘기했다.


선생님이 들고 오신 두툼한 질문지에 답변이 다 기록되었고, 선생님은 시아에게 훌륭한 답변을 해줘서 고맙다고 하셨다. 

이제는 시아를 조금 알았으니 시아에게 맞는 학교를 찾아보도록 노력하겠다고 하셨다.

덴마크어를 모르니 처음엔 덴마크어 교육이 가능한 학교에 다니다 가까운 학교로 옮길 수도 있고, 가까운 학교에 바로 들어가서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하셨다.

학교가 결정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조금 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시아야, 수고 많았어. 정말 잘했어. 힘들지 않았어?"

"좀 힘들었지. 그래도 뭐 괜찮아. 선생님도 좋고, 재밌었어."


인터뷰를 하고 5일 정도 지났고 아직 소식이 없지만 당부한 대로 조금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는 중이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다니고 시아는 쉬고 있지만, 나쁠 것도 없다.

'아이들은 잘 하니까, 다 적응하니까' 

분명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빠르게 습득하고 빠르게 스며든다.

하지만, 아이들도 힘들다. 아프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다.

한돌 반짜리 시아를 어린이 집에 보냈을 때, 조금 알았다. 아이들의 적응도 그냥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작은 사람들에게도 낯선 환경과 사람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

작은 사람들에게도 변화의 이유를 이해하고, 변화의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고, 그 변화 속으로 들어가기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돌 반. 변화를 힘겹게 하지만 결국은 참 멋있게 받아들였던 시아는 분명 여덟 살에 맞이한 새로운 환경에서도 잘 해내겠지만, 그냥, 당연히, 어리니까 빨리 적응하라고 떠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조금 느리더라도, 천천히 관찰도 하고, 학습도 하고, 비교도 하고, 좋아도 하고, 미워도 하면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 곳을 받아들이면 좋겠다.

이런 나답지 않은 느긋함에는 시아가 나보다 너무 빨리 적응해서, 시아 곁에 내 자리가 작아질까 하는 이기적인 걱정이 조금 담긴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희망한다.

새 나라에 있는 새 집에서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하루에도 천 번씩 부르고, 일찍 퇴근하는 아빠랑 침대에서 씨름을 하고, 엄마 아빠가 서류 문제로, 집에 필요한 물건을 사느라, 정보를 얻기 위해 다니는 모든 곳에 동행하며 참견하는 이 시간이, 낯선 언어를 하는, 낯선 친구들이 있는 학교를 조금 부드럽게 견디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내복 차림으로 침대에 누운 시아를 꼭 안았다. 

"매일 엄마 아빠랑 있으니까 좋지? 엄마는 좋은데."

"응, 좋긴 하지. 재밌지. 그런데 싸울 때도 많아. 싸울 때는 안 좋아."

"매일 같이 있으면 다 싸워. 하루 종일 같이 있으면서 엄마 아빠는 시아가 하고 싶은 대로, 시아는 엄마 아빠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줄 수는 없으니까 싸울 수밖에 없지."

"알아, 그건 나도 알아. 내일은 나도 엄마 아빠 하고 싶은 것 더 많이 하게 해줄게. 엄마 아빠도 내가 하고 싶은 것 더 많이 하게 해주면 어때?"

시아가 자기 전 기도를 한다.

"하나님, 시아 학교도 빨리 가게 해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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